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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라 Feb 09. 2022

중학교 졸업장 없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사정

그래, 나는 계획이 다 있었다.  


나는 중학교 졸업장이 없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초등학교, 고등학교 졸업장 그리고 대학교 졸업장까지도 있다.

그러나, 중학교는 졸업장은 없는 이상한 일의 전말은, 

내가 캐나다 아보츠포드(Abbotsford)에 있는 Secondary School에 9학년으로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캐나다의 아보츠포드의 경우 한국 고등학교 개념인 Secondary School이 9학년부터 시작되고 12학년에 졸업해서 총 4년을 다니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즉, 한국으로 따지면 중학교 3학년부터 고3까지 같은 학교에 재학하게 된다.


또한, 학기가 9월부터 새 학기가 시작되는데, 나는 한국에서 중3을 올라가기 전 2월에 캐나다에 입국을 했고, 바로 9학년 2월 학기로 들어왔기 때문에 반학기나 월반을 한셈이 되었다... 

즉, 캐나다에 오자마자 6개월 뒤 고1이 되어버린 것. 



중3의 캐나다 고1의 사정을 듣기 전 먼저 한국에서 캐나다로 가게 된 사정부터 말해보려 한다.


오빠가 미국과 캐나다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 나는 이번에는 내 차례라 외치며 미국 유학을 희망했다. 그러나, 한 집안에서 두 명의 아이를 모두 유학 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금전적로나 심리적으로  말이다. 


특히, 당시 아버지는 또 한 번 회사를 그만두시고 엄마와 함께 작은 쇼핑몰에서 등산복 매장을 운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사는 잘 되지 않았었고 교육열이 세던 동네 살고 있던 나와 오빠의 학원비를 지원하며 그 교육열에 참여하려고 노력하던 부모님들은 매우 힘들어하셔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나는 철없게도 미국 유학을 외치고 있었던 것. 


사실 나의 탐험가적 기질과 도전정신은 엄마에게서 왔다. 

당시에는 몰랐으나 사실 내가 캐나다 이민이라는 것을 생각했던 계기가 엄마의 제안으로부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 같이 오빠가 유학했던 '캐나다'에 가보는 건 어떠냐고 

그 동안은 혼자 유학갈 생각만 했지 가족이 모두 함께 외국으로 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당연히, 이민이라는 개념자체는 아예 살고 있는 국가를 바꾼다는 의미였고 다시 돌아올 집이 없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듣게 된 이야기지만 엄마 또한 한국생활에 많이 지쳐있었고, 

해외여행 한 번 가보지 못했으나 언제나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은 꿈을 키우고 있었던 것.


아일랜드 근교 여행 당시 


그날부터 나는 다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캐나다 이민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찾게 된다.

매일 학교, 학원, 집의 반복된 생활을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던 간절한 마음 덕분이었을까 

초등학교 때 오빠의 유학 경로를 찾은 것처럼 이번에도 나는 스스로 캐나다 이민 루트를 발굴하게 된다.


생각보다 취업을 연계한 캐나다 이민 루트가 잘 되어있었다.

특히, 아빠가 취업을 하게 될 경우 우리 또한 함께 비자를 받아 캐나다에서 공립학교를 다닐 수 있으니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도 해외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그 이후, 나 그리고 엄마는 가족들과 함께 캐나다로 갈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그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우리 가족은 프로 이사러라고 할 정도로 아빠의 직업이 매 번 변화하면서 

많은 곳으로 이사를 다녔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만 해도 3곳이 넘을 정도였었다. 

2년을 주기로 계속해서 이사를 했었고,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나는 또 한 번 전학을 가게 되었다. 바로 캐나다로. 



오빠를 제외하고 모두가 찬성해서 오게 된 캐나다 이민.

거의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캐나다에 온 첫날을 잊을 수 없다. 

우리 가족은 당시 한국인의 이민, 유학으로 많이 선호되던 B.C주의 아보츠포드로 가게 된다. 

근처의 밴쿠버의 도심 느낌과 다른 게 넓은 땅에 마켓 한 곳만 가려고 해도 차를 이용해야 하는 정말 넓은 땅을 실감하게 하는 도시였었다.


첫날, 우리는 캐나다에 가기 전 미리 이민 업체를 통해 얻은 아파트먼트에 짐을 풀게 된다.

침대, 소파, 가구 등 아무것도 없이 넓고 휑한 그곳에서 우리는 근처 마켓에서 산 침낭을 깔고

네 마리의 누에고치처럼 한 방에 누워 잠을 청했다.

창문 밖에는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고, 캐나다의 추운 겨울밤을 침낭 하나에만 의지하며

엄마를 보고 괜히 눈물을 흘리던 그 날밤의 기억을 아직 잊지 못한다. 


내가 정말 바라던 캐나다에 왔는데 왜 난 마냥 기쁘지 않을까.

왜 무섭고 걱정이 들고 내가 괜한 결정을 해서 우리 가족들을 고생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등의

복잡하고 부정적인 생각들이 한순간에 나의 머릿속을 잠식했고 

그렇게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며 내일을 기대했고 두려워했었다.


2년 반 넘는 나와 우리 가족들의 험난한 캐나다 이민 생활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깨닫게 된다. 사실 난 낯선 곳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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