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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이상 Oct 22. 2023

#6. 소리 공포

2023년 8월 18일 21:00

하루 종일 내리쬐는 햇볕이 서울 아닌 적도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그런데 해가 지고 난 후에도 땅에서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다. 이런 날은 정말 질식사할 듯한데 에어컨의 냉기로 인한 두통으로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노래에 흥미가 없는 음악 문외한이라 유튜브를 뒤져 쳇 베이커 연주곡을 틀고 창밖을 보며 바람의 기운을 느껴보려 노력했다.      

 

갑자기 친구 남편이 생각났다. 친구 매장에 가면 나조차도 제목이 궁금해지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친구의 감각적인 매력이 그대로 담긴 아담한 소품 매장은 인테리어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끌어들인다. 남편은 그런 매장에 어울리는 앤티크한 디자인의 스피커를 사다 놓고 자신이 선곡한 곡을 튼다. 정적인 성향의 남편은 활동적이다 못해 때로는 공격적인 친구를 다독이는데 특별한 재능을 발휘했는데 그의 무기 중 하나가 음악이었다. 친구는 폭발 직전의 표정을 짓다가도 남편이 조용히 음악을 틀면 어느새 기분이 누그러졌다. 그럴 때면 음악이 궁금해지고 알고 싶어진다. 사람의 분노를 잠재우는 음악의 힘.       


날씨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는 것처럼 이런 기분을 조절할 수 있는 음악을 알고 있다면 삶은 얼마나 평온할까. 그러나 최근 영어 팝송 강좌에 나가는 엄마가 하루 종일 줄기차게 부르는 머라이어 캐리 노래가 생각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퇴근 시간이 1시간 30분 남았다. 곧 S가 상담소 문을 열고 등장할 텐데 오늘은 그가 말할까. 오늘도 아무 말 없이 앉아있기만 할까.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온몸이 서늘해져 상담소의 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9시 정시, 어김없이 문이 열리고 커다란 후드를 푹 뒤집어쓴 S가 등장했다. S는 블랙 데님 팬츠에 블랙 후드 집업 점퍼를 입어 자기 존재를 감추려는 듯 보였다. 그러나 오버사이즈 팬츠와 점퍼는 오히려 183cm의 크고 마른 몸을 도드라져 보이고 했고, 집업 점퍼 뒤의 커다란 화이트 페인팅, 후드 안에 눌러쓴 화이트 볼캡까지 대충 입고 쓴 것처럼 보이지만 치밀하게 계산된 듯 아우라를 뿜어내 시선을 끌었다. 군중 속으로 사라지고 싶지만 동시에 군중에서 빛나고 싶은 이중성, 오늘의 패션은 그런 그의 심리를 유독 잘 드러냈다.      


S는 문을 열자마자 고개만 까딱하고 ‘쉼’ 방으로 직행했다. 손에는 건물 앞 에스프레소 바에서 산 늘 마시는 롱블랙 커피가 들려있었다. S는 내가 방으로 들어가자 마시던 커피를 의자 밑에 놓고 벌린 다리를 좁히고 나름 얌전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 손은 후드 집업 점퍼 주머니에 넣은 채 등을 세우고 시간을 확인하는 것처럼 시선을 벽에 걸린 시계에 고정했다.       


“오늘 같은 날 쳇 베이커라니. 그래도 오늘은 뭔가 소리가 들리네요. 전 선생님이 침묵을 즐기신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은 소리가 없는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S와는 7번째 만남이지만, 한 번도 먼저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말도 한 문장 이상 한 적이 없었다. 늘 단답형이거나 ‘예’ 혹은 ‘아닌데요.’ 간결하게 묻는 말에만 답했다. 할 말이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아 보이는 S가 왜 매주 금요일 9시 정시에 한 번도 시간을 어기지 않고 나타나는지 늘 궁금했다.       


“선생님은 책에 집중하기 위해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하기 위해 책에 집중한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은 침묵이 두렵지 않으세요? 저는 소리가 두려워요. 그런데 전 소리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어요. 그래서.” S는 가수다. 아니 퇴출당한 가수다. 엄밀히 가수이지만, 대중의 시선에서 밀려난 가수. 한때 화재의 중심이었던 아이돌이었지만, 그룹 탈퇴 후 발표한 솔로 음반 2개가 연이어 혹평 받은 후 연이어 두 차례 음주 운전, 두 번째 음주 운전에는 대마초를 피운 것이 발각돼 마약사범이 됐지만, 초범이어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고 소속사의 결정으로 쫓기듯 입대했다.      


입대 후 한 달 정도 지나 소속사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S는 7월 제대하자마자 상담소를 찾았다. 아직 머리가 자라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해서인지 S는 늘 볼캡과 후드로 이중 장치를 했다. 처음 3번째 만남까지는 대화하면서도 볼캡과 후드를 벗지 않았다. 4번째 만남에서 S는 아직 자라지 않은 짧은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더니 볼캡을 손에 쥔 채 대화에 참여했다. “일을 하면서 생긴 습관이에요.” 그냥 이렇게 짧게 한마디 한 것이 그가 볼캡과 후드를 겹쳐 쓰는 설명의 전부였다. 흔히 연예인들은 대중의 시선에서 비껴나기 위해 모자, 선글라스, 후드를 쓰지만, 그런 이중, 삼중 장치가 오히려 대중의 시선을 끈다. 이들이 이를 모를 리 없고 어느새 이 이중 장치 패션은 연예인의 특별한 지위를 내보이는 상징물이 됐다. 그런데 S는 달랐다. 그의 패션은 연예인을 정의하는 요소들로 가득하지만, 14살 보통의 소년이라면 겪었을 16년간 익숙해져야 할 것들 겪지 못한데서 나온 불편감을 드러내는 무표정 때문에 폐쇄성이 더욱 강조됐다.         


S가 신청서에 작성한 내용은 ‘두려움’, 이게 전부였다. S와의 대화는 쉽지 않았다. 물론 질문을 하면서 파고들어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그대로 S가 자기 리듬대로 나갈 수 있도록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S가 굳이 ‘숨’이 아닌 ‘쉼’ 방을 택하는 것, 그 의도를 존중해 줄 필요가 있었다.       


처음 상담소를 찾았을 때 S는 숨과 쉼 팻말 사이 정확히 중간에 서서 흥미롭게 두 단어를 번갈아 보더니 ‘쉼’ 방으로 쓱 들어갔다. 쉼을 택한 이유를 물었을 때 “그냥 좋아서요.” 좋다는 표현의 의미에 관해 질문했더니 “제게 필요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짧게 답했다. 다시 필요에 관해 묻자 “연습생 시절부터 군대에 갈 때까지 한 번도 쉬지 못했거든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대화는 늘 이렇게 이어졌다. 단답형 답변의 단어를 단서로 연이어 질문하기. 그러면 그의 답변이 조금씩 길이가 늘어났다. 마치 리듬을 타듯이.      


S는 아침에는 엄마가 차려놓은 밥을 먹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침에 먹다 남은 음식을 먹거나 엄마가 아침에 식탁에 올려놓은 돈으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해가 져서 집안이 어두워져도 불을 켜지 않았다. 완전히 캄캄해지면 TV를 켜고 소리는 꺼놓은 채 뮤직비디오를 틀고 가수들의 춤을 따라 췄다. S는 초등학교 6년을 그렇게 보냈다.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찍어 올린 S의 어둠 속에서 음악 없이 춤추는 영상이 SNS에서 화제가 돼 중학생이 되면서 대형기획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S는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소리에 둘러싸여 지냈다. 처음에는 소리가 싫지만은 않았다. 그간 지내온 조용함에 반기를 들 듯, 아니면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처럼 S는 소리에 빠져들었다. 가수가 된다는 목표가 있지는 않았지만, 데뷔를 하려면 음악을 알아야 했고, 소리에 익숙해져야 했다. 소리에 익숙해지려 노력할수록 낯섦이 불편함이 되다 결국 두려움으로 좀 더 정확하게 ‘소리 공포증’으로 악화했다. 무대 위에서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심박수가 높아져 진정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숨 쉬기 힘들 정도로 증상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인이 소리 공포증이라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피곤한 탓으로만 생각했고, 매니저는 혹시 공황장애가 아닌지 노심초사할 뿐이었다.     


S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매니저에게는 부모님이 보낸 향이 고약한 한약이라고 하고 텀블러에 위스키를 넣어서 다니며 무대에 오르기 전에 조금씩 마셨다. 때로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이어플로그를 하고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작사 작곡이 아이돌의 필수가 돼 작사를 하게 되면서 소리를 더는 피할 수 없게 돼 대마초까지 시작했다. 자신이 소리 공포증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법정에서였다.        


저는 제가 소리를 두려워한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그냥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다고. 사실 이런 문제로 친구들과 자주 싸웠어요. 같이 활동하다 보니 24시간을 붙어다는데  좀 소리가 높아진다 싶으면 제가 싫은 티를 낸 거죠. 성격상 조용히 하라거나, 하는 표현을 못 하는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이어플러그와 헤드셋까지 써야 했어요. 그런데 그런 저를 친구들이 불편해 했죠. 처음에는 싸움을 걸더니 그나마 반응하지 않으니, 따 시키더라고요. S가 처음으로 길게 쏟아놓은 이야기는 아릿했다.      


중학교에 다녀야 할 14세 소년은 기획사 지하 스튜디오에서 3년의 연습생 생활을 거쳐 고등학교에 입학해야 할 나이인 17세에 6명의 같은 연습생들과 데뷔했다. 3년의 활동에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자 일부 멤버를 교체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대학 생활을 해야 할 20대 초반을 가수이지만 가수가 아닌 채 프로젝트 음반 몇 개를 내면서 흘려보냈다. 그 시간 살아남기 위해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배워보려다 술과 대마초가 일상이 됐다.           


S는 청각에 문제가 없다. 사실 소리 공포증도 상황을 빨리 무마하기 위해 소속사가 증상을 다소 과장했다. S에게는 소리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집안에서 늘 혼자 있던 소년, 그 소년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조금씩 소리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 소년은 소리 없는 세상에서 갑자기 쾅쾅 올려대는 거대한 소음 세계에 내던져졌다. 극단적인 환경 변화가 일차적 문제였지만 소년은 계속 자신의 결함에만 집중했고 자신의 결함을 감추기 위해 술과 대마초를 선택했다. 이제 장성해서 30세 청년이 됐지만 여전히 숨소리마저도 소음이 되는 침묵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대하게 울려대는 소음, 극단에서 살고 있는 소년일 뿐이었다.      


긴 시간을 이야기한 탓인지 내려놨던 커피를 마시면서 한 동안 침묵하다 말을 이어갔다. 상담소에 오면 늘 소리가 없었어요. 아니면 지금처럼 아주 작은 소리 정도. 사실 저녁 9시도 아무도 없고 조용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사실 제가 말도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다소 음량이 높아진 쳇 베이커 연주 소리가 거슬리지 않네요. 제 목소리도.    


이런 S가 군 생활은 어떻게 견뎠을까. 다행히도 그는 야간 보초를 설 때 고요함으로 낮 생활을 견뎌냈다고 했다. 이상하게 군 생활이 힘들지 않더라고요. 훈련할 때 고함치는 소리도. 이상하죠. 활동하면서 그렇게 견디기 어려웠는데. 무엇보다 동료들이 절 그대로 뒀어요. 채근하지도 소외하지 않고 그냥 제가 하는 대로 그대로.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그런 군대라면 말뚝 박는 거라고.      


아마 군 생활은 그에게 적자생존의 경쟁을 치러야 하는 집단이 아닌 처음으로 살아가는 그저 생활하는 동료들과 어울림이었을 것이다. 그런 어우러짐이 소리가 공포스러운 존재가 아님을 서서히 알게 했을 것이다. 그는 지금 깨우침의 과정에 있다. 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여전히 술과 대마초 생각이 나 지금은 음악을 멀리하고 있지만, 음악이 일상의 친숙함으로 느껴지는 오늘이 내일이 되고, 아직은 낯설지만 빛나는 미래가 되지 않을까.      


9시 48분이 되자 그는 모자를 다시 쓰고 쳇 베이커가 오늘 저를 수다쟁이로 만들었네요.라며 가볍게 미소를 짓고 50분이 되자 상담소를 떠났다. 상담소 문을 열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눈에 띄었다. 점퍼 주머니에 넣은 팔목 밑으로 에어팟이 밀려 나온 것이 보였다.       


처음부터 다시 소리와 친구 맺기를 시작하는 S가 이제는 자기만의 속도로 서서히 앞으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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