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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Feb 27. 2024

사는 재미 늘려가기

<글제 : 시도>

    

“몸에 힘을 빼세요.” 수영 초보가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다. 나이 들어서 수영을 배우게 되면서 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물 위에서 발차기를 충분히 하고 시작하지만, 호흡하는 순간에는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생존본능이다. 초보반을 벗어나며 호흡에 자신이 생기자 조금씩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버둥거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물의 부력에 몸을 내맡기니 발차기를 가볍게 해도 몸이 뜬다.


수영에는 몇 가지 정해진 영법이 있지만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가 아니기에 개인차에 따라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은퇴 후 주부반에서 초보 수영을 시작했다. 젊은 시절 물에 대한 거부감으로 수영 배우기를 포기하고 언젠가 달성하고픈 버킷리스트에 넣어두었다. 나이 들어 살이 찌면서 무릎관절에 이상이 왔다. 등산과 장거리 걷기를 자제하라는 의사의 권유로 고민 끝에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이와 반비례하는 자신감에 쭈뼛거리며 체육관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이 든 분들이 많아 보였다. 내 나이는 중간쯤에 속해 다소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샤워장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수영 경력이 보통 20년~30년인 베테랑들이었다. 걷는 것도 힘겨워 보이는데 물속에 들어가면 물개처럼 부드럽게 쓱쓱 앞으로 나아간다. 젊은 사람은 힘을 뽐내며 강하게 헤엄치지만, 어르신들은 경력을 바탕으로 지치지 않는 수영을 하니 만만치 않다.


어느 정도 강습을 받고 나니 호흡이 안정되고 몸에 힘도 빠져 나름 부드럽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코치가 한 명씩 지도해 주면서 “코어에 힘을 주세요.”라고 주문한다. 힘을 빼라고 해서 애써 힘 빼고 가는데, 또 힘을 주라니 어떤 게 맞는 건가. 코치마다 가르치는 방법이 다르다더니. 몸통에 힘을 주니 팔다리가 긴장해서 뻣뻣하다.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고심하며 이리저리 연구한다. 수영은 물속에서 몸과 손발이 각자의 박자를 가지고 따로 놀아야 하는 운동이다. 몸통의 중심엔 단단히 힘을 주고 손과 발은 힘차면서도 부드럽게 움직이므로.


어느 날은 무호흡 수영을 연습시킨다. 각자가 가능한 최대의 거리를 숨을 참고 헤엄치는 방법이다. 숨을 참고 물에 고개를 처박으니 본능적으로 팔은 강풍을 맞은 풍차처럼 빨리 돌아가고 발차기도 분주해진다. 막바지엔 숨이 턱에 차서 멈춰 서게 된다. 연습을 거듭하니 숨을 참고 가는 거리가 조금씩 길어진다. 강습 후 피로감은 있지만 점점 몸이 적응해 나간다. 새로운 목표가 생긴다. 25미터 레인 끝까지 무호흡으로 가는 것이다. 목표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몸에 기운이 차오른다.


은퇴 후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공부하며 인생 사는 방법을 배운다. 나이 들수록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으라는 말을 많이 한다. 목표를 향해 앞으로만 내달리던 젊은 시절을 거치고 나면 나이 들어서 평온하게 사는 것이 좋기도 하다. 그러나 은퇴자들을 만나보면 가끔은 어딘가 모르게 기가 빠진 모습을 보게 된다. 평생을 추구하던 목표가 없어졌을 때 찾아오는 허무감인가. 몸과 마음은 편안해도 가슴 한구석 어딘가 모르게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욕심을 내려놓는 것과 열정을 버리는 것은 다르리라. 열정을 버리면 일상이 시들어 가는 느낌이 든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는 호흡 연습을 하다 보면 폐활량이 늘어나듯이 삶에도 조금씩 더 많은 공기를 넣어줄 필요가 있으니까.


수영을 하면서 인생을 배운다. 긴 호흡으로 편안하게 헤엄쳐야 긴 거리를 갈 수 있지만, 속도를 즐기고 목표에 빨리 도달하는 즐거움이 없으면 지루하고 재미없다. 사는 것도 그렇다. 힘을 빼고 평온하게 살다가도 때로는 온몸에 모터를 단 것처럼 신나게 치고 나갈 필요가 있다. 노년이 되어서도 스스로 도달하고 싶은 작은 목표를 발견하고 성취했을 때 희열을 느낀다. 평소에 즐기는 잔잔한 행복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너무 같은 속도로만 가는 것도 재미없다. 슬슬 가다가 속도를 올려 한 번씩 치고 나가는 것이 인생에서도 더 큰 즐거움을 주지 않을까.


수영장에서 전속력으로 마지막을 마무리하고 나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달리기 연습에서도 속도를 올리기 위해 ‘빨리’ 그리고 ‘천천히’를 반복하는 인터벌 훈련을 한다. 훈련을 통해 몸의 근력을 높이듯이 마음도 새로운 시도를 하면 근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한다.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넘어서면 더 큰 힘이 생긴다. 사람을 만나고, 자연 속을 걸으면서 몸과 마음에 새로운 공기도 불어 넣는다. 마음속에 남은 열정의 불꽃이 꺼지지 않게. 조금은 느리게 살지만 때로는 숨이 턱에 찰 정도로 속도를 내서 달려보는 것이다. 사는 재미를 더하는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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