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잘 찾는 그와 물건을 못 찾는 그녀
"여보~ 이 제품 설명서 어디에 있어?"
그가 말하자마자 그녀 마음은 뛰기 시작했고 머릿속은 레이더를 작동했다.
성격이 급한 그가 한 마디 하기 전에 제품 설명서를 찾아내야만 했다.
분명 여기에다 두었는데 뒤적거리지 보이지 않았다.
머리가 하얗게 되고 온몸이 굳기 시작했다.
만약 누군가 그녀를 부른다면 들고 딸꾹질이 나올 것 같았다.
"여보! 어디에 있나고? 또 찾고 있는 거야?"
"여기 어디 있을 거야."
분주해진 손가락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서랍 안을 휘젓고 있었다.
서랍 속 물건들이 통통 튀어나와 그 주변에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 진짜! 또야?"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냉랭하면서도 강하게 그녀 뒤통수에게 내리꽂았다.
그가 말하자마자 그녀 몸은 경직되었고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듯한 그의 시선을 의식한 듯,
"분명히 여기 두었다 말이야!"
"또 버린 거 아니야? 정리를 하라고 하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 기억해야 할 것 아니냐고. 만날 똑같은 일이 벌어지잖아. 이러다 집문서까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거 아니냐고!"
그가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 그녀는 물건이 어디 있는지 머리를 굴리느라 머리가 터져버리기 직전이었다.
"그만 좀 하라고. 나라고 기억 안 나는 게 좋겠어? 당신이 자주 찾는 거면 당신이 관리하면 될 건데. 매번 나도 찾을 때마다 힘들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가 집문서는 어디에 뒀더라? 혹시 가져오라는 거 아니야?'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찔리면 목소리가 더 커진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놔둬! 천천히 제품 살펴볼게."
한 발짝 물러선 그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그녀도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뭐가 있는지 기억하고 싶다.
하지만 그녀에게 물건 자리를 찾는 건 어렵다. 그의 말을 되새기며 그녀는 생각했다.
'난 도대체 왜 물건 자리를 모르는 거지? 그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안 보고도 아는데 말이야. 뭔가 문제일까?'
사실 그녀는 매일 청소한다. 하지만 구석구석 하지는 않는다. 한 번은 물건을 정리하다 24시간이 부족해 포기했다. 도대체가 집 안에 무슨 물건이 그리 많은지 생각하면서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던 그녀다.
어릴 적 그녀는 청소하라고 하면 여기저기 물건을 쑤셔 넣곤 했다. 심지어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내다 버렸다. 그리곤 후회했다. 희한하게도 꼭 버리고 나면 그 물건의 쓰임새가 생기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니 그녀가 산 물건이 엄마한테 혼날까 봐 숨겨놓은 것 같았다. 물론 결혼하고 나서도 그녀가 원해서 산 물건이 그가 볼 때는 쓸데없는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숨겨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와 다르게 어디에 뭐가 있고 없고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언젠가는 나오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물건을 정리한다.
반면에 그는 주변이 정리되지 않아도 자기가 사용한 물건이 어느 방향에 몇 번째 있는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간혹 연차를 사용했을 때 회사에서 필요한 서류나 상품을 물어보면 몇 번째 서랍에 몇 번째 칸에 있다고 자세하게 말한다. 통화를 듣고 있던 그녀는 그렇게 말하는 그가 그저 신기하고 존경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곤 한다.
한 번은 물건 자리 때문에 그와 그녀는 한바탕 싸웠다.
"아니, 여기에 이걸 두면 어떻게? 이 집에서 내 자리, 내 공간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여기까지 침범하는 거야?" 냉장고 문을 열던 그는 버럭 화를 냈다. 얼굴이 붉어지고 건들리면 손이 올라갈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째려봤다. "뭐가?" 그녀는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여긴 내 술병자리라고! 내가 자리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면서, 이곳에 다른 걸 넣는다는 건 나를 무시하는 행위잖아!"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콜라가 남은 플라스틱 병이 술병 자리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이게 그렇게 화나는 일인가!' 어이없다는 표정과 놀란 표정이 섞여 어정쩡한 표정이 이 된 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치우면 될 거 아니냐고! 자리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 하면 대구 하다 언성이 더 높아졌다.
사실 집에서 그의 공간은 없다. 서재로 사용하라고 만들어 준 자리는 어느새 그녀가 사용하는 공간이 되었고, 신혼 초 만들어 준다던 운동방은 아이들 방으로 되어버렸으니 한편으로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한 그녀였다.
예전에 안방에 있는 침대를 한 번 옮겼다고 난리 친 일도 기억났다.
그의 마음을 알지만 한 번에 물건 자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에게는 큰 숙제로 다가왔다.
메모도 해봤지만, 메모한 종이를 어디에 둔지 기억나지 않아 헤맨 경험이 있다 보니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보관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진이 너무 많다는 거다.
언젠가는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오늘도 그녀는 물건을 정리한다.
물건 있는 자리를 기억하기 위해 그가 놓아둔 자리는 건들지 않았다.
그날 밤, 그녀 책상에서 공부하려고 하려다 포기한 큰 아이가 말했다.
"엄마! 책상 좀 정리하세요. 어떻게 이런 데서 작업해요?"
그녀는 씩 웃으며 "치우면 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