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타기 매뉴얼을 좀 부탁해서 말이야."
빠(Bar)에 홀로 앉아 술을 마시는 여성을 상대하는 것은 언제나 매우 조심스럽다. 낯선 동네의 술집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경우라면 조금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술집의 주인이기 때문에 쉽사리 농담을 건네거나 장난을 걸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 자칫 오해를 사게 된다면 꽤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순전히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일 뿐, 맹세컨대 실제로 오해를 산 적은 없다.
여자는 약 5분 간격으로 왼쪽 다리를 꼬았다가 오른쪽 다리를 꼬았다가 하는 행동을 반복하며 자세를 바꿨다. 깡마른 채 쭉 뻗은 두 다리는 마치 쓰레기봉투를 뚫고 나온 한 쌍의 나무젓가락 같았다.
나는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자리가 불편하신가요?"
여자는 깜짝 놀라더니 다리를 가지런히 하고 공격적으로 말했다.
"어머! 그쪽이 왜 제 다리에 관심을 가지세요?"
"네? 아... 저는 '다리'가 아니고 '자리'가 불편하신지 여쭤본 건데요..."
여자는 '흠흠'하고 헛기침을 두 번 하더니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발음을 똑바로 하셨어야죠. 그래도 제가 오해한 거라면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여자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말했다.
"저는 지금 나무늘보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대화 상대가 필요해서 온 것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일하세요."
"네. 그러도록 하지요."
잠시 후 정말로 나무늘보가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나무늘보는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늘보를 껴안으며 말했다.
"이 느림보 같으니! 언제까지 나를 이렇게 기다리게 만들 셈이야? 보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어."
나무늘보는 여자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말했다.
"미안해. 갑자기 일이 생겨서 급히 웹하드에 자료 좀 올려주고 왔어."
"그랬구나... 무슨 자료였는데?"
"예전에 말했던 서커스단 기억하지? 그 곳 단장이 나무 타기 매뉴얼을 좀 부탁해서 말이야."
"그런데 왜 그렇게 싱글벙글이야? 뭐 기분 좋은 일 있었어?"
"하하... 그 단장이 자기 다리가 참 예쁘다면서 부럽다고 하더라고."
"뭐야? 부끄럽게~ 그런데 그것 때문에 아직까지 웃고 있는 거야?"
나무늘보는 나를 힐끔 보더니 여자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알면서 또 물어보는 거야? 나는 모든 행동이 느려빠진 나무늘보라고. 한 번 웃으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좀 걸려."
"그렇구나. 그건 몰랐네. 얼마나 걸리는데?"
"글쎄... 한 20년 정도?"
여자는 무척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그럼 한 번 웃으면 평생 간다는 거잖아!"(나무늘보의 수명은 20년 정도라고 한다.)
당신이 나무늘보의 사진을 봤을 때 만약 그 나무늘보가 웃고 있다 하더라도, 섣불리 그 기분에 대해서 판단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