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로프를 못 타면 베이스를 치면 된다구.
그는 항상 딱 달라붙는 청바지와 원색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 본래 직업은 밴드의 베이시스트였으나 그것으론 도무지 살아갈 해법을 찾을 수 없어서 최근에는 로프를 탄다고 했다.
"로프라구요?"
내가 묻자 고층빌딩의 유리창을 닦는 일이라고 그는 다시 설명해주었다.
그의 이름은 이터널이라고 했다. 나는 Eternal(영원한, 영구적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말했다.
"특이하고 좋은 이름이네요. 제가 아는 동생도 성이 이(李)씨인데, 존 레넌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딸 이름을 이매진이라고 지었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터널씨는 터덜터덜 걸으며 말했다.
"상관이요? 하하... 재밌지 않나요? 영어단어 같으면서도 또 그... 뭐더라? 암튼 동시에 우리나라 이름이 되니까요." - 왜 그 당시에 '중의적'이라는 말이 생각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
"내 이름은 영어단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단지 터널 공사를 하던 아버지께서 이 터널을 뚫을까 저 터널을 뚫을까 고민하던 중에 제가 태어나서 저는 이터널이 된 겁니다."
"아... 그렇군요."
뭔가 분위기가 어색해져서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며칠 뒤 터널씨는 무릎과 허리에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로프를 타던 중 매듭이 풀리는 바람에 벌어진 사고였다. 건물 3층 정도의 높이에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터널씨는 놀란 동료들에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괜찮아. 괜찮아. 너희들이 아니고 내가 떨어져서 다행이야. 나는 로프를 못 타면 베이스를 치면 된다구. 너희들은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잖아?"
별 일 아닌 듯 웃으며 농담을 건네는 터널씨였지만, 그의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긴 수술을 무사히 마쳤지만, 그는 결국 영영 걸을 수 없게 되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던 그는 나에게 더 이상 스키니진을 입을 수 없다며 투덜거렸다. 그리고는 담배에 불을 붙여 긴 한숨과 함께 긴 연기를 푸욱 내뿜었다.
터널씨는 물었다.
"전에 이터널이 영어로 무슨 뜻이라고 했죠?"
"영원한."이라고 나는 짧게 대답했다.
"나에게 영원한 것은 불행밖에 없습니다. 언제쯤 내 인생이 컴컴한 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나와 터널씨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병원 스피커에서는 존 레넌의 <이매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