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받침 마크

"그럼 오히려 잘 됐네요! 박쥐도 동굴에서 사니까요!"

by 다뜨베이더

회사에서 나의 하루 일과는 항상 상사의 눈치를 살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곤 했다. 회사라고 해봤자 기다란 책상 하나를 가져다 놓고 두 명이서 같이 쓰는 사무실 한 칸이 전부였지만, 내 상사 - 말하자면 나의 유일한 상사인 동시에 사진기자 겸 편집장 - 와 나는 누군가에게 한 번쯤 자랑을 해도 될 만큼 꽤 다양한 분야의 일을 맡아서 하고 있었다.

상사는 자주 외출 - 그의 표현으로는 외근 - 을 하곤 했는데, 한 번 나갔다 하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일단 돌아오기만 하면 마치 둥지 안에 새끼들을 숨겨놓은 제비처럼 일거리를 곧잘 물어오곤 했다. 그리고는 찍어온 사진들을 내 앞에 툭 던져놓고 다시 외출을 한다.

나에게는 일거리를 물어온다거나 사진을 찍는다거나 하는 재주가 없었으므로 그것은 나름대로 공정한 분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상사와 나는 7:3의 비율로 보수를 가져가는데 내가 받는 보수로도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계절에 맞는 옷 한 벌 정도를 사 입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으므로 특별히 큰 불만은 없었다. 단지, 상사의 성격을 맞추기가 꽤나 어렵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내 상사는 성격이 굉장히 다혈질이라서 자칫 신경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게 되는 날엔 큰 불편을 겪게 되기가 일쑤였다. 뭔가 수가 틀린 다음부터는 기약 없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일단 그런 상황이 닥치고 나면 제 때에 밥을 먹는다거나 원하는 시간에 퇴근을 한다거나 하는 것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은 <월간 박쥐>라는 잡지에서 의뢰한 것이라고 했다. 상사의 설명을 침착하게 듣고 나서 나는 대경실색하며 혀를 내둘렀다.


"아니! 어떻게 방 안에서 흡혈박쥐를 키운다는 말입니까?"


내가 아무리 지금껏 상사의 비위를 잘 맞춰 왔다지만 이번에는 정말 경우가 다르지 않은가!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면서 말했다.

"그럼 어쩌겠냐... 나는 집에 아내도 있고 말이야..."

"그래도 이번에는 절대 안 됩니다. 흡혈박쥐라니요! 그것도 방 안에서!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겁니까?"

"야! 임마! 너는 편하게 혼자 살잖아!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을 해봐라. 너 같으면 아내랑 단 둘이 사는데 흡혈박쥐를 들여놓을 수 있겠냐? 내가 만약에 그랬다가 부부싸움이라도 하면, 니가 책임질 거냐? 또 부부싸움 끝에 우리 아내가 입을 다물어버리면 나는 영락없이 동굴 신세라고!"

"그럼 오히려 잘 됐네요! 박쥐도 동굴에서 사니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이제 드디어 해고를 당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거야! 동굴! 하하하! 너도 가끔은 쓸만한 구석이 있는 놈이었군. 좋아! 흡혈박쥐는 내가 키워보도록 하지! 하하하하!"

그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나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그것은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흡혈박쥐와의 동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그 사실만이 중요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상사의 눈치를 살피느라 초긴장 상태에 놓여있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상사의 콧등에 정확히 좌우 대칭으로 상처가 나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벌써 세 시간이 넘게 함구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 어떤 말도 먼저 꺼낼 수가 없었다.


'흡혈박쥐에게 코를 물린 것이 틀림없어.'


나는 자세를 고정한 채 천천히 눈알을 움직여서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는 책상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작은 거울로 상처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저런 저런. 저 사람 이제 드디어 미쳤구나. 저러다가 혹시 흡혈귀로 변하는 건 아니겠지?'

점심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나는 끝없는 망상의 세계 속을 헤매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그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오늘은 밖에서 식사를 하도록 하지. 그리고 나가기 전에 한 가지 말해둘 것이 있어."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하고 생각했다.

"이건 진짜로 너한테만 말해주는 거니까 절대 아무에게도 말해선 안돼..."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혼자 키득키득하고 웃었다.


"사실은 말이야. 오늘 아침에 안경을 쓴 채로 세수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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