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보면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가 있다. 이 이야기를 쓸까 아니면 저 이야기를 쓸까. 이렇게 쓰면 주인공이 너무 가벼워 보이려나? 저렇게 썼다가 글이 너무 무거워지면 어떡하지. 묘사가 많으면 지루하려나. 너무 생략하면 뜬금없어 보일까.
크게는 장르 선택이나 연재처를 고르는 일에서부터 작게는 어떤 대사, 어떤 단어를 적을지까지. 모든 게 다 고민이다. 그저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자기만족에 그치는 거면 모르겠으나, 웹소설 작가는 상업 작가다. 자신이 쓴 글을 세상에 내보이고 사람들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그 판단은 매출, 댓글, 악플, 별점, 평점 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사람의 정신이란 참 허약한 거라 이런 평가에 속절없이 휘둘리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글을 작성하는 순간부터 고뇌에 빠지게 된다.
난 잘 쓰고 있는 걸까. 사람들이 좋아할까. 내 글이 남들이 읽기에도 재미있을까.
그렇게 겁에 질리게 되면 무당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 든다. 제발 좀 알려달라고. 내 글이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냐고. 제발 내게 확신을 달라고.
조언을 감당할 역량이 필요하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주며 애타게 조언을 갈구하기도 한다. 친구나 가족이 가장 만만하다. 때로는 아는 기성 작가나 매니지의 편집자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돈을 내고 유료 피드백을 받는 사람도 있다.
이런 조언이 나쁜 건 아니다. 자신의 길이 흔들릴 때 확실한 지침이 되어줄 수도 있고,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힌트를 얻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때 작가 자신이 먼저 작품에 대해 확고한 기준이 서 있어야 한다. 주변의 조언이나 피드백을 들었을 때 자신의 작품에 맞게 옥석을 가려서 취사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타인에게 이끌려 작품이 표류하게 되니까.
당연하지만 지나치게 남의 조언에만 의지하면 좋지 않다. 그렇게 쓴 글이 실패해도 최종 선택은 자신이 했으니 남을 탓할 수 없다. 설사 그 글이 성공한다 해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온전히 자신의 힘이 아니라 타인이 이끌어줘서 성공했다면, 그 작가는 다음에도 계속 남의 조언이 없이는 글을 쓸 수 없을 테니까.
처음 매니지와 계약을 맺고 편집자를 배정받을 때 매니지에서 물어온 적이 있다. 내가 쓰는 소설에 대해 자잘한 피드백을 많이 주는 편집자를 원하는지, 아니면 내용에는 손대지 않고 교정 교열만 해 줄 편집자를 원하는지.
무슨 똥배짱이었을까. 나는 그저 교정 교열만 해 달라고 했다. 누군가가 내가 쓴 글에 손을 대는 건 내 '작가'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나도 내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나름 수년간 이런저런 글을 써 오다 보니 내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혼자 고민하고 직접 글을 다 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물론 가끔은 답답한 마음에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잘 쓰고 있는 거 맞냐고. 이렇게 쓰는 게 맞는 거냐고. 누군가 내 옆에 붙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코치를 해 주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건 '내 글'이 아니지 않나.
글은 내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가는 거다. 내용이나 전개 방향도 내가 고민해야 하고, 글도 내가 써야 한다. 욕을 먹든 칭찬을 받든 결국 내가 감당해야 한다. 내 글에 온전히 책임을 지려면, 글을 쓰는 것도 온전히 '나'여야 한다.
그러고 보면 작가란 참 세상 외로운 직업이다. 하지만 치열한 고민 끝에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왔을 때 그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