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게 다가서니 그 여자는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여기서 아까부터 계속 있던 건 아니에요.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진 말아 줘요."
그러지 않았더래도 상관없다. 똑같이 이상함을 넘어선 마음이니.
"그쪽 집 보다 저를 쫒느라 여기 더 자주 오겠어요."
옆 자리 그네에 앉았다.
"우진 씨와는 헤어질 마음이 없는 건가요?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지원 씨가 제 친구라면 저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요?
"헤어진 전 남자 친구와 그 여자 친구를 따라다니지 말라고 하겠죠. 지나간 일이니 다 잊으라고.
너무 당연하게 지은 씨의 행동을 말릴 거예요."
"저에겐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니까요. 지원 씨는 알 수 없겠죠. 이해하지 못하겠죠."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슬픈 느낌이에요. 우진 씨에게 깊은 사랑을 받았었고 많이 의지했으니까요.
지금 저의 행동이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어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저희 둘을 괴롭힐 작정이네요. 멈출 생각이 전혀 없는 얘기처럼 들리고요.
너무 늦었어요. 어서 집으로 돌아가세요."
그네에서 일어나면서 그 여자 앞에 섰다.
"먼저 들어가세요. 저도 곧 갈 거예요."
그럴 기색이 없어 보였지만 대꾸하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시간은 오전 1시를 넘어섰다.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현관문을 열기 전 뒤를 돌아봤다.
그 여자가 뒤를 따라와 보고 있다.
주연이와 오랜만에 술 약속을 잡았다.
나야말로 친구에게 조언을 듣고 싶다. 예상하는 내용이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털어내고 싶었다.
"조용하다 싶어서 우진 씨랑 별일 없이 잘 만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참 어이가 없다.
이쯤에서 정리해."
당연한 얘기다. 친구로서 나 같아도 말리고 싶은 마음일 테니까.
"둘 사이를 응원할 수가 없잖아. 우진 씨가 더 나쁘다고 생각해. 네가 그런 일들을 겪는데 왜 보고만 있는 거야?"
"우진 씨도 어쩔 도리가 없을 거야."
"이 와중에 우진 씨 편들 마음이 생기니? 다 집어치우고 또 그 여자가 나타나면 경찰이라도 불러."
주연이의 단호함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기분 좋게 술이 넘어가지 않아서 인지 체한 듯 금방 속이 안 좋아진다.
나를 바라보는 주연이의 시선이 답답해 보인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응원받지 못하는 연애라니.
당장이라도 모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앞장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