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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이령 Aug 18. 2024

그녀는 연민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별에 대한 아주 짧은 이야기

그녀는 생전에 똑똑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그건 그녀가 편협한 불평들을 늘어놓고 있던 나에게 다른 관점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을 때, 그리고 그런 나의 잘못들을 사람들이 못 보는 곳에서 아주 작게 알려주었을 때 알 수 있었다. 


지구의 자전 주기와 달의 공전주기가 같아서, 지구에서는 달의 같은 면밖에 볼 수 없다. 평범한 지구인인 나는 달의 같은 면만 보고 살았다. 그런데 그녀는 달의 뒷면을 볼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사람들의 못 보는 면을 볼 수 있어서, 내가 보지 못하는 달의 뒤편 이야기를 늘 나에게 들려주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연민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연민하는 것에 게으른 나조차도 누군가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비로소 연민을 갖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와 달의 한 면만 볼 수 있는 이 지구에서 언제까지나 함께 살 수 있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는 나에게 말도 없이 지구를 떠나버렸다. 나는 그녀가 항상 지켜보던 달의 뒤편으로 떠났을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연민이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아마 그녀는 우리가 그녀를 걱정하는 것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연민을 연민했을 것이다. 연민을 가진 사람만이 연민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뒷모습을 잘 살피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뒷모습은 누구에게도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떠날 때조차 자신의 뒷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가까웠다가도 때로는 멀어지는 관계가 익숙해져 가는, 어른이 되는 과정 속에서 그녀의 닿지 않던 뒷모습은 나의 영원한 상실이 되었다. 그녀의 상실로부터 나의 일상이 회복되더라도 나는 평생 그녀를 그리워할 것이다.

 




나의 이야기는 언제나 상실로부터 출발한다. 

그녀는 나의 해소되지 않은 이야기이다. 

나는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며 이야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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