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다
"퍼펙트 데이즈"
들어본 제목 같아서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본 영화지만
그래서 잘했다 싶었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대사가 안 나와서 주인공은 말을 못 하는 줄 알았다.
말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안 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정말 간혹 나오는 대사가 신기하게도 느껴졌다.
정말 대사가 적은 영화지만 전해지는 이야기가 적은 것은 아니다.
[편안하다.]대사가 없이 흘러가는 장면도 그저 일상으로 흘러감이
편안하다. 어떤 갈등도 없을 것 같다.
영화 초반 술이 덜 깬 직장인이 아침청소중에 들어오고 심지어 나가면서 청소중 푯말을 차서 넘어뜨릴 때,
내가 느끼는 유일한 갈등 순간이었고.. 이후 너무 편안한 마음이어서
보다가 자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2시간 정도,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또한 그럼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외동이라서 외롭겠다고, 지금은 아이가 하나인 집이 흔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남매, 자매, 형제 등 2명 이상은 가정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부럽기도 했다.
특히 누나가 있는 집을 부러워해서 교회에서도 누나들이랑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뭔가를 꼭 하고 싶었지만 말도 못 하고 기분 나쁘듯 고개만 숙이던 일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친구가 누나가 있다면 더욱 부러워서 티를 팍팍 내곤 했다.
그들의 서슴없는 폭력을 마주하고 나서는 부러움도 안도함도 없이 그저 다른 집이구나 했다.
마치 외동은 모든 것을 독차지할 것이라는 착각과 마찬가지인 착각으로 살았다.
그런 착각인 것이다.
외동이라서 외롭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가지지 못한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내게는 외로움이 그런 것이었다.
누군가 함께 했던 기억이 흔하지 않아서 그 후에 찾아오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알 수 없었다.
매번 질문을 들었던 어린 날에는.
주인공도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저 [편안하다.] 말할 수 있는 일기에 단 한 줄도 쓰기 어려울 것 같은
하루를 매번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함께 일하고 같은 공간에서 식사를 해도
감정을 나눌 일이 없던 그가
어느 날 찾아온 조카(니코)와 보낸 며칠, 정말 짧은 며칠로
단단히 굳어있던 감정의 상자가 부서져 버렸다.
먹먹함과 그리움은 공존했다.
다시 볼 수 있는 사이지만 다시 볼 수 없음을 아는 사이.
같은 선상에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둘은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이라고 말하며 오늘을 기록한다.
니코가 떠나고, 사랑인지 아닌지 모를 사람의 과거를 마주하고
함께 일하던 동료가 그만두고, 모르는 이와 남겨둔 쪽지로 게임을 하고
달라질 것 같던 그 삶은 다음날도 다를 것 없다.
하지만
달라졌음을 그는 표정으로 모든 말을 대신하며 영화는 끝난다.
누군가의 삶이다.
다큐라고 해도 될 만큼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일이다.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이지, 누군가의 실제 삶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그의 표정을 보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단지 한 남자의 삶이 주는 공감은
자신의 것을 지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온전히 자신의 삶에서 틈을 보여주고 자리를 내어주는 배려를 받는다는 것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희생이며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임을 느낀다.
조카 니코에게 방을 내어주고 자신은 창고 같은 곳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잠을 청해도
혹여 니코가 깰까 봐 불편할까 봐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움직이며 출근 준비를 한다.
하루의 삶이 눈을 뜨기도 전에 정해진 사람에게
하루의 모든 것을 어제와는 다르게 만들어진다는 것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일 텐데, 그는 함께 다시금 정해진 하루를 살아간다.
나 역시도 알 수 없었다.
그의 하루에 틈을 만들어주고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 자리가 얼마나 큰 자리이건 편한 자리이건 상관없이
내어준 이의 마음은 그보다 훨씬 희생이라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가늠으로 상대의 마음을 평가하고 희생을 원한다.
나의 가늠으로 너의 마음 크기를 평가한다.
.......
첫날부터 니코는 따라간다.
거절하는 삼촌을 협박해서 따라간다.
멍뚱이 바라보던 시간이 함께하는 시간이 되어간다.
내어준 자리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기에 엄마가 찾아온 날,
가기 싫다고 삼촌을 또다시 협박한다.
내어준 자리를 티 내지 않은 삼촌과 협박을 해서라도 함께하고 싶었던 조카
그렇게 함께한
"지금은 지금"
당연한 듯이 받지 않았던 마음이 전해지는 모든 순간은
결국 마음에 새겨진다.
편안하다고 느끼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기대고 싶어지는 것 같다.
재산과 직장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지켜내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그 말은
대부분의 우리는 불안정한 삶을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해진 것은 똑같고 달라질 것도 똑같은 불안할 수 있는 일상이다.
그도 우리도.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의 오늘을 [편안하다.]로 말할 수 있는 삶으로 마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가 든다.
그곳이 다리 위라도, 하늘 위라도 우리는 우리 하루는 편안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원한다면.
#편안하다_편하고 걱정 없이 좋을 때 느끼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