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조용한 휴일 오후, 습관적으로 엄마한테 전화해 통화를 이어가던 중 아롱이의 기침소리가 들렸다. 이제 나이가 있는 나의 강아지는 엄마랑 통화할 때 자신의 기침소리로 존재감을 알렸다. 그날은 유독 기침소리가 길었다. 그러다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어, 아롱이가 피를 토했는데?"라며 전화를 끊었다.
바로 눈앞에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초조했다. 병원에 가고 검사를 받는 걸 기다리는 동안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 만남보단 이별의 순간들이 더 많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축하보단 위로를 해야 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핸드폰에는 주인을 떠나보낸 번호들이 하나둘씩 늘었다. 시간이 갈수록 애정하던 것들과 이별해야 하는 날이 자주 찾아온다.
모든 인연들이 소중하지만 가장 맞이하고 싶지 않은 순간은 역시, 나의 늙은 개 아롱이와의 이별이다. 개를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 타의에 의해 아롱이를 만났다. 나를 만나기 전 아롱이는 파양의 상처가 있어 참 사납게 굴었다. 사나운 개와 무지한 주인이 만났다. 둘 다에게 고단한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동지애가 생겨버렸다. 서로를 참느라 애쓴 날들이었다. 강형욱 훈련사가 없을 때 개 키우기는 정말 지도 없이 모르는 곳을 여행하는 것과 같다.
시간이 많이 흘러 난 독립을 했다. 이젠 매일 보지 못하고 종종 아롱이를 만나러 간다. 그때마다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주고 좋다고 한다. 아롱이는 나에게 의심의 여지 없는 애정을 준 유일한 존재다. 그런 나의 개는 나보다 훨 빠른 시간속에서 어느덧 나이든 개가 되었다. 만날 때 나보다 어렸는데 지금은 나보다 두 배 더 많은 나이가 됐다. 나이에 비해 체력이 짱짱해 이별따윈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아롱이가 아프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긍정적인 여지도 있다는 것. 경과를 보고 다시 검사를 하면 된다고 한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때가 오지 않기를 기도한다.
자꾸 애정하는 것들이 나를 떠나간다. 서서히 아주 천천히. 이게 나이듬의 다른 의미인 것 같다. 새로운 게 많았고, 시작이 더 많았던 나날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헤어짐을 생각하는 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제 모든 인연이 언제까지 함께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헤어지는 순간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척할 수 있다(마음이 조금은 허전하다). 척할 수 없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별이 찾아오려고 한다.
애정했던 것과 이별하는 일은 마음의 준비를 해도 괜찮지 않다. 이것이 나이들면서 적응할 수 없는 한 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