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배드민턴을 치자며 지인 몇 이서 번개를 열었다. 장소를 정하는데 홍대에 있는 체육관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모임 중 오빠 한 명이 언니를 불러내겠다며 카톡을 보냈다. "누나, 이번 주에 홍대 클럽 가요." 기혼자인 그녀는 화들짝 놀란다. "홍대? 나 클럽 안 간지 너무 오래됐는데."
배드민턴에서 클럽이란 동호인 모임을 말한다. 정확히 5년 전까지만 해도 동호인 클럽이라는 말에 왠지 모를 거부감을 느꼈었다.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많을 것 같은 모임. 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 같은 느낌.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하고 온통 담배연기가 자욱할 것 같은 이미지. 스포츠로써 즐기는 배드민턴이라기보단 음주가무를 위한 전야제에 지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 그래서 사실 처음 클럽에 가입하는 게 꺼림칙했다. 배드민턴 클럽을 검색해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뒤졌다. 내가 가려고 하는 클럽에 젊은 사람들은 얼마나 있는지, 분위기가 괜찮은지, 술자리는 어느 정도 있는지 적당한 사전 취재를 마쳤다.
우리 클럽엔 회원이 100명 정도 있다. 연령대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어르신들은 아침 클럽에 많이 가입되어있지만 직장이나 학교로 주간에 바쁜 사람들은 저녁 클럽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저녁 클럽엔 다양한 연령대가 뒤섞인다. 클럽에 처음 간 날, 기억나지 않지만 무수히 많은 어른들이 계셨다. 우리를 안내해준 운영진이 살짝 귀띔해준다. "어른들한테는 인사 잘해야 돼요. 인사만 잘 하면 돼." 애도 아니고 인사 잘하라는 소리를 이 나이 먹도록 들어야 할까, 싶으면서도 사실은 가장 기본인 그것을 얼마나 안 하면 저리도 신신당부를 해올까 싶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몸에 익을 수밖에 없는 작은 예절과 소소한 매너들이 배드민턴 클럽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손 아랫사람이 먼저 인사하는 것, 포트에 물이 없으면 정수기에 가서 받아오는 것, 혼자 앉아있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가서 말을 걸 줄도 아는 것, 좀 귀찮고 궂은일이 있어도 그냥 눈 감고 하는 것. 여기서 좀 더 용기를 내 아무나 붙잡고 저랑도 배드민턴 쳐주세요, 할 용기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허허벌판에 홀로 놓인 것처럼 덩그러니 앉아있는 초심자들이 많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다들 즐거워 보이는데 아무도 내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선뜻 아무나 붙잡고 안녕하세요, 저 오늘 처음 왔는데 한 번 만 쳐주세요. 왠지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다 퇴짜라도 맞으면 다시는 말 걸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1년이 되기도 하는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텨내냐에 따라 클럽에 남고 싶은지가 결정되는 것 같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싱글인 직장인들은 여유가 있고 시간이 있고 어느 정도 취미생활에 돈을 쏟아부을 수 있는 여력이 된다. 배드민턴을 갓 시작한 저들은 재미만 붙이면 얼마든지 따라간다. 나와 내 친구가 그랬다. 나름 운동신경이 있다 자부했었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아했고 운동도 즐기는 성격이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름 운동신경이 있다고 자부했던 건 영어 원어민 앞에서 나는 알파벳 A를 필기체로 쓸 줄 알아,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수준이었지만. 어쨌거나 한동안 푹 빠져 살았다. 우리 클럽엔 우리와 비슷한 연령대가 많았다. 군대를 가겠다며 빡빡 깎은 머리를 하고 회식자리에 오던 스물한 살짜리 남자애부터 내일모레 마흔을 바라보는 언니와 오빠들까지. 운동이 끝나면 소소하게 맥주 마시는 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클럽 행사가 있는 주말이면 이른 아침부터 모여 행사 준비에 참여했다. 뒤풀이 자리에 가서 그간 인사만 꾸벅 드리던 어르신과 독대를 하기도 했다.
클럽을 기피하는 2,30대도 꽤나 많은 편이었고 개중엔 어른들의 으름장이나 A조들의 텃세를 버티지 못해 나간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클럽은 적응하는 곳도 살아남는 곳도 아닌 그저 버티는 곳이었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상사의 비위를 맞추다 퇴근하고 찾아간 체육관에서 또다시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허리를 굽신거린다는 건 쉽지만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닌 편이었다. 내가 방송사에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정부의 욕을 내게 해오는 아저씨가 있는가 하면 날 보면 자식 대하듯 먹을 거 하나라도 더 챙겨주는 이도 있었다. 동생들이랑도 자주 어울리는 편이기도 하지만 난 어른들을 대하는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니, 나름 좋아했다. 실수하면 실수하는 대로 날 싫어하면 싫어하는 대로 어리다는 이유로 응석을 부릴 수 있는 울타리였으니까.
클럽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클럽의 경우 50대가 가장 많았다. 50대면 부모님 뻘이기도 한데, 우린 그분들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꼬박꼬박 쓰곤 했다. 남자분들께는 차마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전해야 할 사항이 있으면 호칭을 생략하고 직접 달려갔다. 그렇다고 오빠라 부르라 강요하는 일도 없었다. 선생님, 사장님, 쌤, 고문님.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사실 편하게 부를 수 있는 호칭은 많았다. 클럽에 소속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모든 여성회원을 언니라고 부른다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그만큼 거리가 좁혀졌고 어느새 입에 밴 탓인지 난 길거리에서 만난 50대 여성에게도 스스럼없이 언니라 부르게 됐다.
강남에서 친구들이랑 술 마시던 어느 날 밤. 소주를 시킨 친구가 병뚜껑을 열어놨었나 보다. 새 소주라고 생각했던 나는 제대로 된 회오리를 보여주겠다며 손목에 180도 스냅을 주고 흔들었는데 아뿔싸. 옆자리 여성분들에게 소주가 그대로 날아갔다. 물방울이 튄 정도가 아니고 소주병 안에 있던 액체가 무더기로 허공을 후려갈기며 날아갔다. 내 옆에 앉아있던 세 여성분 사이에서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말로만 듣던 강남 사모님들이었다.
"어머 진짜 죄송해요. 닫힌 줄 알고 흔들었는데, 괜찮으세요?"
도끼눈을 하고 쳐다본다.
앞머리며 외투며 흥건하게 젖어있다. 무작정 빌어야겠다, 싶었다.
"너무 젖으셨다. 어떡하지. 언니 너무 죄송해요."
반전이 일어났다.
"언니? 아니 말을 참 예쁘게 하네. 괜찮아요. 그럴 수 있지. 차갑긴 한데 괜찮아."
웃어 보이는 여유를 보여준다.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었으나 언니라는 말의 효력을 새삼 깨달은 날이었다. 입에 밴 습관이라는 게 그렇다. 배드민턴 클럽에서 숙달된 호칭이 아니었다면 난 그날 외투 세탁 값 수백만 원을 물어 드려야 했겠지.
때론 속이 상하기도 하고 때론 다 집어치우고 클럽을 그만두고 싶다 생각했던 적도 많다. 그곳 역시 사람 사는 곳,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 뒷말도 많고 조금만 눈에 띄는 행동을 해도 입소문에 오르락 거리는 건 시간문제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눈치만 보다가 내 운동하러 가서 기세에 눌려야 한다니,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어쨌거나 그 클럽에서 5년째 버티는 중이다. 결혼을 안 한 처지다 보니 갈 때마다 결혼하란 잔소리를 듣는다던가 연애를 하면 하는 대로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이래저래 말을 듣는다. 그래도 네가 진짜 힘들 때, 정말 죽고 싶을 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나한테만은 털어놔. 술 한 잔 언제든지 사달라 해. 말해주는 언니들도 있고. 배드민턴 치는 걸 유심히 지켜보고 영상으로 찍어놨다가 이 자세를 고치면 좀 나아질 것 같다며 조언을 해주시는 사부님도 계시고. 이래저래 좋은 점이 훨씬 많은 정겨운 곳이다. 그 맛에 올해는 운영위원에 레슨 총무까지 맡게 됐다. 나의 클럽생활은 언제까지 이어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