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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경 Oct 04. 2022

고수

선택 받은 자의 허브

좋아하는 음식이 많지만 그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요리가 있다. 바로 똠얌꿍이다. 태국 요리인 똠얌꿍은 닭과 새우 껍질을 우려낸 국물에 레몬그라스, 갈랑갈, 라임 등으로 향을 내고 샬롯과 마늘, 각종 태국식 소스를 넣어 만든다. 다양한 향신채와 향신료 덕분에 맵고, 시고, 달콤한 맛이 어우러진 국물 요리로 그 맛의 중독성이 굉장히 강해서 한 번 먹으면 바닥이 보일 때까지 먹는다. 자극적인 맛에도 물리지 않고 먹는 데에는 고수의 역할이 크다. 고수는 내가 좋아하는 허브이기도 하다. 특유의 개운한 향이 똠얌꿍 국물 맛을 텁텁하지 않게 해준다. 태국 현지에 있는 듯한 기분을 선사해 스트레스가 심할 땐 이 한 그릇으로 기분 전환한다.


고수를 듬뿍 넣은 똠얌꿍을 자주 먹다 보니 고수를 더 맛있게 먹는 노하우도 생겼다. 고수를 손질할 때 뿌리는 버리지 않고 따로 모아둔다. 그리고 잎, 줄기 부분을 두 가지 형태로 손질한다. 하나는 잘게 다지고, 다른 하나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숭덩숭덩 썬다. 참고로 고수를 잘게 다지면 그 향이 배가된다. 이는 허브의 식생과 관련이 깊다. 동물이 자신을 씹어 먹는 등 물리적인 공격을 가할 경우, 독한 향을 내뿜어 자신을 뱉어버리게 만들기 위한 것. 생존을 위해 내뿜은 고약한 향이 내게는 음식의 풍미를 살리고 입맛을 돋우는 향인 셈이다. 잘게 다진 건 똠얌꿍 국물을 끓일 때 넣는다. 이때 따로 모아둔 뿌리도 함께 넣어 고수 향을 더욱 진하게 우린다. 숭덩숭덩 썬 것은 완성된 똠얌꿍 위에 뿌리고 먹는 중간중간 곁들인다.


이렇게나 고수를 좋아하지만 집에 늘 고수가 있는 건 아니다. 밀폐용기에 물에 적신 키친타월을 깔고 고수를 넣어 냉장 보관하면서 중간중간 고수의 상태를 확인하고 키친타월도 바꿔줘야 하는데 자꾸 깜빡 잊어서다. 종종 고수 없이 똠얌꿍을 먹곤 한다. 맛은 좋지만 뭔가 허전하다. 그러던 중 몇 번의 시도 끝에 고수를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고수를 구입하면 앞으로 3일간 먹을 분량을 제외한 나머지를 손질하여 한 번 먹을 분량씩 얼린다. 원래의 고수만큼 향이 진하지 않고 신선한 느낌이 덜하기는 하다. 하지만 똠얌꿍, 팟타이처럼 열을 가하는 요리를 할 때 넣고 익히면 그 향이 제법 난다. 시험 삼아 냉동 보관해 봤는데 그 맛이 나쁘지 않아 자주 써먹는다.


이렇게 고수 사랑이 남다른 내게 ‘태국 요리를 제대로 즐기고 싶은데 고수를 먹지 못해 아쉽다’, ‘고수 맛을 아시다니 부러워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들 못지않게 나도 마음이 편치 않다. 맛있는 고수를 먹을 수 없다니! 그러고 보니 우리 언니도 고수를 못 먹는다. 언니와 떠난 홍콩 여행에서였다. 기내식 이후 첫 식사였던 딤섬이 나왔을 때 언니는 극도의 허기에도 불구하고 소에 들어간 잘게 다진 고수를 일일이 발라냈다. (자세히 안 보면 모를 정도로 잘게 다졌는데도 불구하고!) 그 탓에 유명 맛집의 요리를 마음껏 즐기지 못했다. 나는 그 상황이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했다. 그 상황도 여행의 추억이라고 생각해 조용히 그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뒀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들은 고수를 못 먹을까? 고수를 못 먹는다는 사람들 대부분은 고수에서 비누 맛이 난다고 말한다. 비누 맛이라니? 고수에서 개운함을 느끼는 나와는 정반대다. 상한 고수를 먹고 트라우마라도 생긴 건가? 내 입에는 맛있기만 한 고수가 비위를 상하게 한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유가 궁금하던 찰나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했다. 고수에 대한 기호는 맛에 대한 주관적인 기준이나 심리적 요인이 아니라 타고난 유전자 탓이라는 것. 유전자의 후각 수용체인 OR4N5, OR6A2의 유형이 열쇠를 쥐고 있다. 이 수용체가 변형되면 고수 특유의 냄새를 띠게 하는 성분을 감지한다. 맞다. 이 성분은 비누, 로션 등에 있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고수에서 비누 향이 난다고 말하는 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또한 여기에 TAS2R1라는 수용체까지 관여하면 고수에서 쓴맛도 느껴진다고. 만약 후각 수용체와 쓴맛 수용체 둘 다 고수에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면? 고수를 입에 댈 수조차 없겠다. 이러한 유전자는 전 세계 인구의 7분의 1가량이 보유한다고 알려져 있다.


타고난 유전자 탓에 후천적으로 노력해도 고수를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맛이 주는 즐거움을 모를 수 있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 고수 맛을 즐길 줄 아는 유전자를 가진 게 행운이라는 생각도 든다. 문득 며칠 전 SNS에서 본 게시물이 생각났다. 마카오의 어느 가게에서 고수 아이스크림을 판매한다는 내용이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다진 고수를 토핑처럼 올렸는데 고수 특유의 상쾌한 풍미와 아이스크림의 시원한 촉감이 조화롭다는 평이다. 지금 당장 갈 순 없지만 나도 맛보고 싶다. 가게 되는 그날까지 계속 판매하면 좋겠다.




고수 | 산형과 고수속 / Coriandrum sativum L.

미나리보다 잎이 작은 허브로 태국 및 베트남, 남미 및 스페인 등의 요리에 쓰이며 사람에 따라 그 맛에 대한 기호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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