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매력에 푹 빠질 시간
즐겨 찾는 식물 판매 사이트의 장바구니를 아주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식물이 있다. 바로 바질, 그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스위트바질이다. 바질은 이탈리아 대표 요리인 피자, 파스타 등에 두루 들어간다. 그중 하나인 마르게리타 피자에는 토마토소스, 모차렐라 치즈와 더불어 없어서는 안 될 재료로 꼽힌다. 왜냐고? 각 재료들이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바질, 이탈리아에서만큼은 예사롭지 않은 허브인 건 확실해 보인다. 한술 더 떠 우리나라에서도 떡볶이, 라면, 치킨 등에 바질 소스를 접목한 메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바질 특유의 싱그러운 향은 느끼한 요리도 물리지 않고 계속 먹을 수 있게 해준다. 아무런 조리를 거치지 않은 생바질도 좋지만 약간의 정성이 들어가면 활용도가 올라간다. 내 기준에 바질 페스토가 그렇다. 바질 페스토는 바질과 잣, 캐슈너트 등의 견과류, 마늘, 올리브오일, 파르마산 치즈, 소금 약간을 갈아 만든 양념으로 어떠한 식재료와도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나이프로 떠서 빵 위에 잼처럼 쓱쓱 바르거나 파스타에 다른 재료 없이 이것만 넣고 버무려도 근사한 요리가 완성된다. 그렇다면 맛은? ‘이 맛있는 걸 왜 이제서야 먹기 시작했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스럽다. 마늘과 치즈를 만나 풍성해진 바질 향과 감칠맛이 입맛을 돋워 자꾸만 손이 간다.
한동안 바질 페스토에 푹 빠져 자주 구입했는데 레시피를 알고 나서부터는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럴 거면 바질을 직접 키워서 먹는 게 낫겠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바질 모종을 알아보니 따뜻한 기온에서 하루에 5시간 이상 햇빛을 받으면 건강하게 큰단다. 출장이 잦아 당장 키우는 건 어려워 장바구니에 담아뒀다. 그렇지만 바질을 키우는 날을 기대하며 지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설렘이다.
방콕 여행 중 다섯 가지 태국 요리를 배우는 쿠킹 클래스를 들었다. 똠얌꿍, 팟타이, 그린커리 등 태국 요리를 좋아해서 자주 해 먹었던 터라 현지인에게 현지 방식으로 배우고 싶었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태국 현지 재료를 하나 둘 야금야금 생략하고, 또 내 취향대로 바꾸면서 현지의 맛에서 한참 멀어졌을 것 같았다. 게다가 현지인이 알려주는 요리 이야기도 무척이나 궁금했다. 수업은 시장 탐방과 실습으로 이루어졌다. 여행객이 아닌 현지인이 가는 시장에 가다니! 그들의 일상에 반 발짝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선생님은 가게에서 판매하는 재료들을 하나씩 설명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연 허브였다. 이때 여행 중에 궁금했던 허브의 정체를 알았기 때문이다. 볶음 요리를 먹다가 자그마한 이파리를 발견했는데 맛이 굉장히 독특했다. 자연스럽고 은은함이 미덕인 허브의 향치고는 굉장히 인위적이랄까? 꽤 강렬했다. 콧속 후각 세포가 뒤집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과장하자면 화공 약품 같았다.
선생님은 가게에 수북하게 쌓인 허브를 한 움큼 집었다. 그리고 대뜸 “타이 마사지~”라며 허브를 꾸깃꾸깃 구겼다. 순간 나를 포함한 모든 수강생들이 크게 웃었다. 물리적인 자극을 받으면 더 강력한 향을 내뿜는 허브의 특징을 신체의 압점을 누르는 타이 마사지에 비유한 선생님의 유쾌한 센스였다. 마사지를 마친 허브의 향이 기대됐다. 허브를 코에 갖다 댔다. 한껏 극대화된 향이 콧속으로 훅 치고 들어왔다. ‘아하, 바로 너였구나!’ 여행 내내 잊지 못할 인상을 남긴 허브의 주인공, 바로 타이 바질이다. 타이 바질은 다른 바질보다 조금 작고 잎 가장자리가 톱니 모양처럼 생겼다. 선생님은 라오스, 캄보디아 등 이웃 나라에서도 볶음, 튀김, 샐러드, 수프 등에 다양하게 쓰인다고 설명했다. 인도에서는 망자를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한다고 여겨 보통 차로 달여 마신단다.
바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듣자니 바질의 잎이 아닌 다른 부분도 먹어 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년 전 건강 칼럼을 쓰기 위해 먹은 바질 씨앗이다. 그 당시 바질 씨앗이 생소했던 터라 수소문 끝에 간신히 한 통 구한 기억도 난다. 바질 씨앗은 물에 10~15분 넣어두면 퉁퉁 불어서 개구리알처럼 된다. 칼럼의 골자는 이렇게 불어난 바질 씨앗의 부피 때문에 포만감이 느껴져서 식사를 적게 먹고 변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 외국에서는 ‘바질 시드 푸딩’이라 부르며 간단한 아침 식사로도 즐긴다고. 나의 경우 바질 씨앗을 오버나이트 오트밀에 넣거나 샐러드 위에 뿌려 먹고 있다. ‘바질 씨앗 먹었으니까 덜 배고프겠지?’라고 기대도 하면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고약한 향을 내뿜는 생존 전략이 인간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되어버린 상황을 두고 바질은 무슨 생각을 할까? 바질에는 미안하지만 덕분에 인간은 폭넓은 미식의 세계를 탐험하며 바질을 활용한 요리를 계속 개발하고 찾는다. 그런데 좋다고 해서 소비를 많이 해도 될까? 당연히 괜찮지 않다. 자칫하면 바질의 씨가 마르고 설상가상으로 지구 환경 파괴의 주범이 될 수도 있다. 아보카도처럼 말이다. 뜬금없이 웬 지구 파괴며 아보카도냐고? 아보카도는 식물의 열매지만 동물성 버터처럼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좋아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수요가 늘자 농가에서는 재배지를 넓혔고 그 과정에서 삼림이 파괴되었다. 게다가 재배하는 데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필요하다. 폭발적인 아보카도 수요가 환경 파괴의 악순환을 초래한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편에서는 아보카도 소비를 줄이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금은 어디에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바질이지만 욕심이 지나치면 바질도 이 같은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바질을 좋아하는 방식을 ‘먹기’와 같은 소모적인 형태 말고 우리와 오래 공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도 탐색해야겠다.
바질 | 꿀풀과 배암차즈기속 / Ocimum basilicum L.
상큼한 향이 특징으로 스위트 바질, 타이 바질 등이 있으며 다양한 요리에 두루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