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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링핀 Jul 31. 2016

나는 주인을 잃었다.

나는 개다.

사람의 무릎 높이 정도의 검은색 털을 가진 아주 작은 개다.

항상 엄마는 ‘깨미야’ 라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불러준다.

그게 나의 짧지만 친숙한 이름이다.

난 평화롭고 따뜻한 주택에서 한 사람의 엄마, 그리고 한 사람의 언니와 살고 있었다.

행운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아직 추위는 가시지 않아 쌀쌀한 초봄이지만 햇빛이 별빛처럼 떨어져서 따스 해 보이는 날이었다.

“깨미야~ 옷 입자, 오구 착하네~ 말 잘 듣네!”

언니의 목소리다.

내 털보다는 거칠지만 따뜻함이 가득 담긴 옷을 입혀주더니 다음엔 나에게 목줄을 단단히 매 주었다.

답답하지만 엄마나 언니는 목줄을 매지 않으면 날 잃어버린다며 항상 꽉 매어주었다.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꽤 멀리 나가는 것 같다.

평소였다면 집 근처에 공원이나 한적한 시골길을 걷다 돌아왔겠지만, 언니는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푹신푹신한 뒷 자석에 날 태웠다.

차를 타고 나가는 일이라면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같이 살던 또 다른 언니들과 그 언니들의 아이들, 아니라면 조금은 무서운 병원, 아니면 나와 같은 개들이 많은 애견카페 같은 곳일 것이다.

시큼한 레몬 향이 짙은 언니의 차를 타고 출발했다.

평소 익숙했던 풍경을 지나치니 길쭉 해서 똑같이 찍어낸 듯한 아파트들도 보였고 높고 푸르른 산봉우리들, 투명한 강가, 그리고 하얀 구름이 드문드문 펼쳐진 파란 하늘이 보였다.

언니가 창문을 아주 살짝 열어주니 맑고 상쾌한 공기가 내 코로 들어와서는 날 들뜨게 만들었다.




잠이 들었다.

아주 잠깐 이였던 것 같은데 꿈을 꾸었다.

평소에는 잘 주지 않지만 알 수 없는 어떤 날 뜬금없이 나에게 주는 고기 통조림.

언니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날 깨워주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은 좋다. 사랑받는 기분이라서.

언니가 나를 번쩍 안아서 밖으로 나오니 그곳에는 지금까지 본 적 없던 수많은 사람들과 아이들, 그리고 드문드문 보이는 나 같은 개나 강아지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확 띄는 노란색 물결의 광활한 개나리 꽃밭.

너무나 신났었던 것 같다. 

언니에게 내려달라고 몸부림쳤다.

내 목줄을 단단히 잡더니 날 땅으로 내려줬고 그 즉시 나는 개나리 꽃밭으로 언니를 끌듯이 데려갔다.

언니도 나만큼 신났는지 같이 힘든 기색 없이 나와 같이 뛰어 주었다.

정신없이 뛰어보니 내 코앞엔 밝은 햇살에 따사롭게 내리쬐는 개나리 꽃밭이 있었고 그 황홀하고 달콤한 꽃 향기에 취할 듯했다.

그렇게 얼마나 돌아다녔을 까.

많은 사람들이 날 귀엽다며 쓰다듬어 주고 아기들은 날 보며 “강아지다!!”라고 외치며 신기하게 구경하기도 하며.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었다.

천천히 해가 지더니 하늘이 어두워졌고 순간 낡은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광장 중앙에서 불꽃놀이가 있을 예정입니다.”

언니는 나를 번쩍 안아 들더니 사람들이 많은 곳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의 사람들은 일제히 같은 곳을 향해 시선이 쏠려 있었고 기억 하지 못 할 만큼 아주 순식간에, 어느 순간, 땅에서 하늘로 여러 개의 밝은 빛이 아주 빠르게 쏘아졌다.

그 빛을 멍하니 따라가려는 순간 그 밝은 빛들은 무작위의 순서로 여러 개씩 혹은 차례대로 무시무시한 큰 굉음을 내며 터져갔고 언니에게 안겨있던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폴짝 뛰어 품에서 뛰쳐나와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와중에도 그런 굉음은 끊임없이 터져 나왔고 그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개나리 꽃밭을 가로질렀다.

끊임없는 그 폭발음은 멈출 기색도 없이 내 귓속을 파고들었고 난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아주 멀리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 까.

그 소리가 잦아든 만큼 난 어딘가에 멀리 와 있었고 어두웠다.

더 이상 언니의 냄새는 나질 않았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부터 난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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