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인 듯 아닌 듯 자연스럽게 친해진 사람이 있었다. 얼굴 한 두 번 봤을 뿐이고, 대화 잠깐 해 본 게 다였지만, 이상하게 끌렸다. 어색함도 없었고, 마음도 편안했다. 친해지고 싶었고, 친해지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잠시였지만 그렇게 우리는 가까워졌다.
점차 얼굴 보는 횟수도 늘어났고, 연락도 잦아들었다. 연락하면 할수록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었고, 늘어가는 재미만큼 마음도 커져갔다. 사람이 사람에게 빠지는 건 생각보다 쉬웠고, 자연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상대의 연락을 기다리게 되고, 상대의 일상을 궁금하게 되고, 더 알아가고 싶어졌다.
썸에서 느낄 수 있는 안정감과 설렘은 충분한 도파민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구속된 관계는 아니었지만, 지금 당장 각자의 화살표가 서로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정감을 느끼는 데 충분했고, 어쩔 수 없이 선을 지켜야만 하는 관계가 주는 긴장감은 설렘으로 채웠다.
상대에게 다가갈수록, 호감이 더 생길수록 놓을 수 없는 불안감도 커졌다. 불안함 마음에 “우리 무슨 사이야?”라고 급발진을 해버렸지만, 이 말 말고는 다른 말이 없었다. 만나고 연락한 지 한 달 쯤이 되어서도 썸을 타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사귀는 건지 사귀는 척을 하는 건지 애매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오래 기다린 시간일 수도 있고, 너무 빠른 타이밍에 던진 말일 일수도 있겠으나, 서로의 마음과 감정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아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더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다면 기다릴 수 있고, 편한 사이로만 지내자고 한다면 그 거리만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론 썸에서 연인이 되는 것이 연인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친구도 남자친구도 아닌 이 애매한 사이를 견딜 수 있어야 새로운 관계 국면이 시작된다. 서로에게 마음이 있어도 누군가 먼저 용기 내지 않으면 괜한 시간만 흐르고, 서로 마음의 온도와 타이밍이 정확히 맞지 않으면 엇나간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슨 사이인지 묻지 않아도, 한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