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연하게 다이어트를 선언하고 돌입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지난해 6월에 관람했던 브루노 마스의 내한 공연이었고, 두 번째는 공연 후 1주일 뒤 떠났던 하와이 여행이었다. (브루노 마스가 하와이 출신이라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일까)
음악 없이는 한 시간도 버티기 힘든 음원중독자이자 팝 음악 광팬이기에 오랜 세월 꾸준히 활동해 온 브루노 마스의 내한공연 소식이 솔깃하게 들려왔다. 지난 몇 년 동안 코로나와 아이의 입시가 맞물려 미술관 관람 이외에는 문화생활의 여유를 누리지 못했었는데 코로나도 잠잠해지고 아이도 대학생이 되고 나니 그제야 삶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딸아이와 함께 공연을 가기로 의기투합한 후 어마어마한 예매 광클 전쟁에 참전했다. 티켓 사이트가 오픈되고 예매 대기 순번 63000번째라고 떴을 때의 황당함이란... 어리버리한 엄마와 달리 야무진 딸아이의 광클 실력으로 티켓 예매에 성공하였다.
막상 공연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 공연에 가기에 '내 나이가 너무 많은 게 아닐까.', '아줌마가 주책이다' 등등... 나이가 들수록 외모뿐만 아니라 마음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떨어져 갔다. 언제부터 내가 원하는 삶보다 남들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에 더 신경을 쓰게 된 것일까.
드디어 공연 당일, 설레는 마음으로 딸아이와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향했다.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했고 현장의 분위기는 흥분과 기대로 가득했다. 2010년부터 10년 넘게 꾸준히 활동하며 대중성과 음악성, 뛰어난 가창력과 퍼포먼스를 겸비한 그의 무대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요동을 쳤다.
그의 무대 첫 곡은 <24K magic>. 첫 소절 가사는 이렇다.
Tonight, I just want to take you higher
Throw Your hands up in the sky
Let's set this party off right
Players, put yo'pinky rings up to the moon
가사처럼 그날의 기대와 흥분을 표현해 주는 오프닝이었다. 공연에 가는 걸 언제 망설이고 주저했느냐는 듯이 나는 2시간 내내 20대 때처럼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며 그의 공연을 마음껏 즐겼다. 올림픽 주경기장은 댄스곡이 나올 때 하나의 거대한 클럽이 되었고, 그가 피아노를 치며 발라드를 부를 때는 콘서트홀이 되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공연에 푹 빠져서 즐겼던 나는 47세도 아니고 23세도 아닌, 나이의 꼬리표를 달지 않은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반복되는 일상에 젖어 그저 세월이 흘러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고 살았을 뿐이다.
공연의 흥분과 감동이 가시기도 전에 공교롭게 1주일 뒤 떠나게 된 하와이 여행. 항공사에 근무하는 남편 덕분에 제법 전 세계 여러 지역을 여행했지만 어찌어찌 미루다 보니 하와이 여행은 처음이었다. 환상적인 하늘과 기온은 높지만 습기가 없어 쾌적한 날씨,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하와이는 직접 와보니 왜 지상 낙원이라고 불리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고 이내 홀딱 반하게 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도시보다도 다양한 인종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자유와 낭만이 넘쳐나는 그곳에서, 콘서트에서 느꼈던 똑같은 깨달음이 다시 소환되었다. 나이나 몸매에 상관없이 자신감 있게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 다정하게 손을 잡고 꿀 떨어지는 눈빛을 교환하며 걸어가는 동성 커플,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에 서핑 보드를 짊어지고 걸어가는 싱그러운 청춘들. 와이키키를 걸어 다니는 사람 중 남의 시선 따위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사람들에 둘러 싸여 있어서였을까. 나이는 비록 중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호기심과 끼가 넘치고 낭만을 사랑하고 자유분방한 나의 정체성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좁디좁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며 이웃들 눈치를 보며 점잔을 빼느라 한 여름에도 동네에서 짧은 반바지 한 번을 못 입고 살았다.
왜 바보처럼 남들 눈치나 보며
답답한 틀 속에 갇힌 채 얽매여 살았을까?
진짜 나로 살아갈 시간도 모자란 인생인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깊은 깨달음과 반성을 곱씹으며 여행 사진들을 보았다. 마음에 체면이라는 가식의 가면을 쓰고 살아왔던 것처럼, 내 몸에는 부지불식간에 군살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가면이 덮여 있었다. 잃어버렸던 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무엇이든 도전해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참에 눈에 띈 것이 덕지덕지 붙은 내 몸의 군살이었고 그래서 앞뒤 가릴 것 없이 무작정 도전했던 것이 다이어트였다. 타고난 낙천주의와 만사태평 성향인 내가 순탄치 않았던 혹독한 다이어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남들에게 그럴듯해 보이는 인생 말고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인생을 살자' 깊은 깨달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쏘울다이어트의 결과는... 체중 6.5kg 감량, 허리 사이즈 2.5인치 감소, 66에서 55 사이즈로 갈아탔다. 다른 사람들의 다이어트 결과에 비해 대단한 수치는 아니지만 평생 한 반도 다이어트에 성공해보지 못한 나에게는 너무나 큰 성과였다.
마음은 나이 드는 법을 모른다. 우리가 평범한 일상에 시간과 노력을 조금만 더 들여 변화를 준다면 우리의 몸도 나이 드는 법을 잊어버리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날씬해진 몸이 아니라 건강해진 몸은 생기를 잃고 축 쳐졌던 나의 영혼을 구원해 주었다.
나이를 핑계로 노화는 막을 수 없다고 체념하며 무기력하게 살고 있었다. 막연하고도 무작정 돌입한 다이어트는 40대 중후반에 접어든 나에게 엄청난 행운이자 축복이었다. 눈앞에 결과가 나타나건 말건 개의치 않고 끈기와 오기로 하루하루 실천해 나간 운동과 건강한 식단은 나의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바꿔 놓았다. 다시는 나의 몸과 마음을 시간과 중력에 의해 축 쳐지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시간과 중력에 결코 지지 않는
중년을 위한 몸과 마음 회복 프로젝트,
이것이 쏘울다이어트다.
그동안 <47세 민이맘의 쏘울다이어트> 연재 브런치북에 보내주신 독자님들이 관심과 응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독자님들의 격려와 응원 덕분에 힘내서 완간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작가로서의 스페셜리티가 없다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예측불허하고 다양한 모습을 지녔듯, 무엇을 쓰든 ‘글을 쓴다는 것‘ 그 행위의 가치와 숭고함을 알기에, 앞으로도 무엇을 쓰든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저의 스페셜리티는 우리의 복잡다단한 일상다반사가 아닐까요? :)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건강한 쏘울 라이프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