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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위풍당당한 외모와 식감, 멧돼지찰 (반달미)

이영동 농부가 육종해낸 현대의 토종



멧돼지찰은 성숙한 벼 이삭을 보는 순간 딱 감이 오는 이름이다.  뻑뻑하고 거무튀튀한 까락이  딱 멧돼지의 등덜미 털을 연상케 한다.


직접 멧돼지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존재감을 알 것이다. 다행인지 나는 사냥당한 가련한 상태로만 보긴 했지만, 그 덩치며 날뛰는 기세가 산길에서 마주친다면 도망치고 싶은 맹수의 포스다. 잉들랜드를 바이킹의 침략에서 구한 알프레드 대왕이 전투에서 분전하던 모습을 '멧돼지와 같이 돌격했다'고 묘사한 기록도 있으니 그 기세를 짐작할만 하다.



장흥의 이영동 농부는 토종 관련해서는 유명한 분이다. 이분이 자연변이한 쌀을 육종해서 개발한 종자라니 고릿적부터의 토종은 아니고, 비교적 근래에 생겨난 토종이다. 전통이 그렇하듯 토종도 박제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 움직이고 진화하는 중이다.




이 쌀은 5~7분도 도정이니 백미로 취급해야 할 것인데 이렇게 쌀알마다 줄무늬가 선연하다. 이 외모 부터가 눈길을 끈다. 이삭도 도정한 쌀도 힘찬 느낌이라 멧돼지찰이란 그 이름이 참 어울린다 싶다.



어떻게 밥을 지어야할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보통의 밥짓기. 압력솥에 물도 보통 정도로 잡았다.



밥은 살짝 질게 나오네. 역시 찹쌀이고 햅쌀이라 물을 많이 안 잡는 게 좋은 쌀이구나.


진 밥 좋다는 취향이면 이것도 나쁘지 않겠다.



쌀눈이 살아있는 도정의 덕도 있고 줄무늬 부분도 역할이 있는 것 같다. 약식같이 찰랑거리는 느낌 속에서도 씹히는 것들의 식감이 분명하다. 토종쌀 대부분이 가진, 밥 짓고 난 후의 향도 있고, 밥을 짓고 난 후에도 뭔가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미학이 있다.


살짝 질어졌지만 멧돼지 느낌은 분명한 오늘의 밥짓기는 80점.


내 취향으로 물을 조금 줄여 돌솥에 지어보니 이건 정말 맛있는 밥쌀이다.  꼬독꼬독 씹히는 느낌 너무 좋고, 이건 누룽지를 구워도 대박이겠다 싶다.



까락이 이렇게나 뻑뻑해서는 새들도 접근 못할 것 같은 수준이다. 멧돼지찰을 심은 논의 추수기 풍광은 꽤나 아름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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