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다르고 속다른 쌀의 매력
북흑조는 이삭이 검고 키가 크다. 1미터가 넘게 자란다고 하니 어른 허리춤 이상으로 올라오는 키다. 그러면서도 대가 굵어서 거의 대나무 같은 느낌이라고 하고(사실 대나무도 벼과 식물이다), 그래서 볏짚공예용으로도 좋다고 한다.
충분히 영글지 않은 북흑조의 이삭은 꼭 기장이나 수수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북흑조는 평안남도의 주요 재배벼이고 만생종이다'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흙살림연구소 윤승희 소장이 여러 자료를 뒤져본 바로는 그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한다. 어쨌든 '조선도품종일람'에는 북흑조라는 품종에 대한 기록은 없다. 이야기가 길어지니 관심있는 분들은 북흑조의 유래 비정에 대한 윤승희소장의 블로그를 참조해 보시고.
https://m.blog.naver.com/tangquari/222042271447
어쨌거나 이제 이 벼는 북흑조로 세상에 알려졌고 그 강인한 기상의 외모 덕도 있어서 인기가 있는 벼이기도 하다. 이름과 기원에 혼동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토종쌀이 북흑조만은 아닌데, 요즘은 유전자분석을 하면 기원은 확실히 밝힐 수 있으니 언젠가 사람들의 충분한 관심이 있으면 해결될 문제다. 프랑스의 시라가 이란의 시라즈에서 기원한 것이 밝혀졌듯이.
외모는 멋진데 그럼 밥맛은 어떨까? 직접 밥을 지어보면 알 일이다.
토종쌀 치고는 쌀알이 굵은 편이다. 겉껍질은 흑자색이지만 도정한 쌀은 하얀 쌀. 쌀을 씻을 때 손의 감촉도 나쁘지 않은 것이 쌀알이 굵으면서도 균질도가 높다.
밥짓기는 물을 조금 줄인듯 하게 잡아보았다. 취향의 밥짓기지만 뒤돌아보면 물은 보통 정도로 잡아도 좋았던 것 같다. 사실 쌀알이 클 때 물은 조금 더 잡는 것이 좋다. 무게당 표면적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간과할만한 것이 아니다.
밥은 잘 되었다. 쌀에는 은은한 향이 있다. 사실 토종쌀은 다들 향이 있는 편이다. 이제까지 특별한 향미가 아니면 그럭저럭한 밥냄새만 나던 개량종쌀을 평생 먹어온 입장에서 이 향에 주목을 못 했는데 요즘엔 밥지으면서 이런저런 향을 느끼는 재미에 빠져있다.
밥맛이나 식감만 말하자면 균형감이 좋은 삼광과도 비슷하고 물을 조금 더 주어 부드럽게 지었으면 참드림 느낌도 났을 것 같다. 아마도 물을 조금 더 주어 평범하게 짓는 편이 쌀의 특징에 부합했을 것 같다. 그러니까 튀는 것 없이 밸런스 좋고 일반적인 밥을 짓기에도 적당한 쌀이다.
그럭저럭 나쁘진 않았지만 특징을 살리지는 못한 오늘의 밥짓기는 79점
한 마을이 전부 북흑조 농사를 짓는 곳이 있었다면 가을의 벌판은 검은색으로 뒤덮였을 것이다. 황금빛 들판이란 것 자체가 얼마나 '개량된' 우리의 관념인지. 벼는 경관작물로도 큰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