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인 명예의 전당 : 유명한 자폐인들
파란만장 자폐인 - 27 : 유명한 자폐인들
흔히 자폐인들의 전설적인 인물로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을 생각하는 비율이 높지만, 이 분은 이제 원조 자폐인 유명인사에 속합니다. 한국에서는 배형진과 김진호를 꼽지만 이들은 사실상 활동을 마치고 조용히 지내고 있고 거의 이전 세대 인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소개하는 유명한 자폐인들은 그 외에도 유명하고 지금도 나름대로 활동하는 자폐인들입니다.
이토 가쓰유키 (伊藤克行) : 일본 남성 변호사로, 변호사 활동 도중 자신이 자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자신만의 법률사무소, 즉 개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발달장애 등 장애인 관련 소송 등의 전문 변호사로 담당하며, 발달장애 관련 법률 상담의 시간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특히 장애인 고용노동 관련 사건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코미치 마코토 (横道誠) : 일본의 작가이면서 교토부립대학 교수입니다. 한국에는 《우리는 물속에 산다 : 발달장애로 살아가는 일의 감각적 탐구》 (みんな水の中 「發達障害」自助グル-プの文學硏究者はどんな世界に棲んでいるか)라는 책이 소개되었습니다. 이 책은 자폐인 자조모임 활동 이야기도 살짝 섞여있습니다. 자폐인이라는 사실은 40대에야 알았다고 합니다.
윤은호 (尹恩鎬) : 필자의 자폐 관련일로 한국 내에서 가장 많이 협력하는 자폐인입니다. 이 책에서 유일하게 소개할 만한 한국 자폐인으로, 한국 최초의 자폐인 박사 학위 취득자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자폐 관련 연구를 하면서 이제 국제 학술 연구로 진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필자와 함께 자폐인 조직 estas의 기획과 설립과정에 관여한 인물이기도 한, 필자의 국내 자폐 관련 활동에서 이래저래 많이 협력하는 동료라는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프랭키 맥도널드 (Frankie MacDonald) : 캐나다의 남성 유튜브 아마추어 기상캐스터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기상캐스터를 꿈꿨는데, 2009년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면서 데뷔해 주요 기상 소식을 전하는 짧은 동영상을 지금도 올리면서 2024년 7월 기준 29만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유명 유튜브 기상 채널로 성장했습니다. 자폐인이 자체적인 콘텐츠로 유튜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입니다.
티모시 나딤 (Timothé Nadim) : 프랑스의 활동가로, 주로 학교폭력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성과는 학교폭력 등을 방지하는 프랑스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것으로, 현재 프랑스 정부에서도 채택해서 사용 중에 있습니다. 실제로 11세부터 14세까지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하며, 자폐인이라는 사실은 2019년 3월에 알려졌습니다.
페르티 쿠리칸 니미패이배트 (Pertti Kurikan Nimipäivät) 밴드 : 핀란드 남성 4인조 록 밴드로, 이 중 다운증후군을 가진 또니 밸리딸로(Toni Välitalo)를 제외하고 나머지 셋인 기타의 페르티 쿠리칸(Pertti Kurikka), 보컬 카리 알또(Kari Aalto), 베이스의 사미 헬레(Sami Helle)가 자폐인입니다. 이들은 장애인 작업장에서 만나 함께 밴드를 결성해 2015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핀란드 대표로 〈나는 항상 해야만 해〉 (Aina mun pitää)라는 제목의 노래를 걸고 출전했을 정도입니다. 노래는 자신들이 항상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에 대한 것을 줄줄 읊은 것입니다. 2017년 이후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페르티 쿠리칸이 고령이 되어서 은퇴했기 때문입니다.
맨 왼쪽 인물이 나리에세 와이트, 넥타이를 매고 있는 자가 필자 (2018년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회동한 뒤 촬영). 옆에 있는 커플도 자폐인 당사자다.)나리에세 와이트 (Nariese Whyte) : 여기서 열거한 자폐인 중 몇 안 되는 필자가 직접 만난 자폐인입니다. 필자는 2018년 장애청년드림팀 연수 과정에서 만났는데, 당시에는 스코틀랜드 청소년 의회(Scottish Youth Parliament) 의원이었는데, 퇴임 이후에도 자폐 관련 활동을 하면서 로나 슬레이터와 같은 정당인 스코틀랜드 녹색당에 입당해 2024년 영국 총선에 알로아·그렌지머스 선거구 (Alloa & Grangemouth)에서 스코틀랜드 녹색당 후보로 출마해 3.4%의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클로이 헤이든(Chloé Hayden) : 오스트레일리아의 자폐인 당사자 활동가이면서 최근 배우로도 유명한 인물입니다. 클로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Heartbreak High에 출연하면서 주요 출연자로 나왔습니다. 물론 당사자로서의 이야기를 쓴 것도 있는데, 《Different, Not Less: A Neurodivergent's Guide to Embracing Your True Self and Finding Your Happily Ever After》를 썼습니다. 또한 2024년 결혼에 골인하기도 했습니다.
헤일리 모스(Haley Moss) : 이 분이 진짜 현실판 우영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변호사이고, 여성 자폐인 변호사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실제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방송되었을 때, 우영우의 실제 모델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작가는 템플 그랜딘을 모델로 했다고 밝힌 바가 있었습니다. 다만 헤일리는 실제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해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품을 좋게 봤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자폐 관련 활동가로도 유명합니다.
엘 맥니콜 (Elle McNicoll) : 영국의 소설가로, 주로 청소년 소설 등을 쓰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대표작인 《스파크》 (A Kind of Spark)가 번역되어 소개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영국에서도 호평을 받아, 영국 대표 어린이 프로그램 블루 피터에서 수여하는 아동 도서상(Blue Peter Book Award)을 2021년에 수상하기도 했고, 나중에 TV 드라마로 각색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필자인 제 서재에도 이미 《스파크》가 있습니다.
로나 슬레이터 (Lorna Slater) : 영국 스코틀랜드 의회 의원으로, 이 자의 소속 정당은 스코틀랜드 녹색당(Scottish Greens)입니다. 한때 스코틀랜드 국민당과의 연립 형식으로 스코틀랜드 내각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스코틀랜드 정치 사정상 스코틀랜드 녹색당이 내각에서 철수함에 따라 퇴임했습니다. 로나의 담당 직책은 녹색 기술, 순환 경제 및 생물 다양성 장관 (Minister for Green Skills, Circular Economy and Biodiversity)이었습니다.
헤더 쿠즈미치 (Heather Kuzmich) : 미국 모델 출신으로, 한국에도 알려진 도전! 슈퍼모델 시즌 9 (America's Next Top Model season 9)에 출연했었고, 모델 활동을 하다가 현재는 게임 그래픽 등을 다루는 회사의 부사장으로 재임 중에 있습니다. 모델 활동을 하면서 게임 그래픽 등을 전공하는 등으로 경력을 쌓았다 합니다. 즉, 자폐인도 경력 전환을 할 수 있다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또한 헤더는 ADHD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카밀라 팡 (Camilla Pang) : 영국의 작가로, 생물화학 박사 학위도 가지고 있습니다. 카밀라는 한국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 삶, 사랑, 관계에 닿기 위한 자폐인 과학자의 인간 탐구기》 (Explaining Humans)·《남달라도 괜찮아 : 자폐인 과학자가 말하는 완벽하게 나다워지는 법》 (Perfectly weird, perfectly you : a scientific guide to growing up)라는 책으로 소개되었는데, 지금은 박사 후 연구과정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은 2020년 영국 왕립 과학도서상을 수상한 책이기도 합니다.
해나 개즈비 (Hannah Gadsby) : 오스트레일리아의 코미디언으로, 한국에서는 최근에야 익숙해지는 스탠드 업 코미디를 진행합니다. 현재 넷플릭스를 통해 코미디 쇼 《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 (Nanette)·《해나 개즈비: 나의 더글러스》 (Hannah Gadsby: Douglas)·《해나 개즈비: 섬씽 스페셜》 (Hannah Gadsby: Something Special)가 공개되었으며, 아예 이것도 넷플릭스로 공개된 성소수자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의 연합 공연인 《해나 개즈비: 젠더 어젠다》 (Gender Agenda)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다양한 코미디 공연을 다니고 있습니다. 또한, 이 제작 에피소드는 따로 《차이에서 배워라 : 해나 개즈비의 코미디 여정》 (Ten steps to Nanette : a memoir situation)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자폐인이라는 사실은 2017년에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활동적인 자폐인들도 있지만, 여기서 짧게 소개하는 자폐인들은 부정적인 이력으로 논란이 있는 자폐인입니다. 즉, 자폐인이라고 모두가 올바르게 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오미 셰이브트 (Naomi Seibt) : 독일의 극우 활동가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발언 등으로 유튜브 채널이 사용 불가 판정을 받은 이력이 있음. 그레타 툰베리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음.
애덤 랜자 (Adam Lanza) : 2012년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로, 결국 총기 난사를 자행한 이후 자신도 사살함. 즉, 결국 처벌을 받을 수 없게 되었음.
이렇게 자폐인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 활동 양상도 다양합니다. 앞으로 이런 인물 열전들을 쓸 수 있다면, 과연 누가 이 기록에 오를 수 있을까요? 그 시절이 되면 어떤 자폐인들이 자폐인들의 명예의 전당에 오를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것은 언젠가 자폐인 명예의 전당을 만들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과연 누가 그 ‘자폐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