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곧 Mar 26. 2024

무게를 들며

Stick to the plan! 원래 계획대로 해!

대학원 생활이 수렁에 빠졌을 때 내가 잘한 일 중 하나는 운동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거다. 집 주변 헬스장에 무작정 찾아가서 강해지고 싶다고 하였는데 꾸준히 다니면서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내가 운동을 해 보니, 너무 무거울 듯 말 듯 한 정도의 무게를 들다 보면 갑자기 '이상한 짓'을 할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스쿼트 하면서 앉았다 일어날 때 무릎이 이상한 각도로 튀어나간다거나, 허리를 구부린다거나, 한쪽 무릎만 먼저 펴 보려고 한다거나. 즉 자세가 무너지는 것이다.


이런 일은 순간적으로 이 무게를 들어 올리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 무게가 딱 달라붙어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때에 주로 벌어진다. 그리고 그러려고 할 때마다 트레이너가 나한테 늘 외치던 말이 있다.


Stick to the plan!
계획대로 해!


얼마나 자주 들었던지 지금도 거의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stick to-라고 영어로 하면 조금 더 귀여운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stick'은 'sticker 스티커'라는 단어에 쓰이는 것처럼 달라붙는다는 뜻이다. Stick to, -에 달라붙어라, "the plan" 계획에. 계획에 달라붙으라는 거니까 원래 계획을 고수하라는 뜻이다.




"이걸 내가 들 수 있을까? 좀 무서운데?"


벤치 프레스, 스쿼트, 데드 리프트 등 무게를 꽤 많이 드는 운동도 배웠다. 그런데 처음 시도해 보는 무게나 이전에 고생했던 무게쯤에 도달하면 이걸 내가 들 수 있을까 근심되고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내 두려움을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편이었는데 (고인물 트레이너는 왠지 나의 우는 소리를 좀 좋아했다), 트레이너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당연히 무섭지!"


나보다 체중은 3배쯤 나가고 들 수 있는 무게는 적어도 5배는 넘을 근육근육 고인물 트레이너가 차근차근 설명을 해준다.


"떨어트리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이만한 무게가 네 눈앞에서 오가고 있는 건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상황이 맞아. 중요한 건 훈련을 통해 올바른 자세에 익숙해지는 거고, 네 한계를 알고 차근차근 해나가는 거지. 그런데 내 생각엔 너는 이 무게를 들 수 있어. 그리고 내가 있으니 적어도 오늘 네가 깔려 죽는 일은 없단다!"


오. 오늘은 안 죽는다니. 고맙구만.


떨떠름하게 끄덕끄덕 하고 있으니 트레이너가 또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기억해. 이건 무거운 게 맞아. 이전 세트보다 현저하게 느릴 거야. 멈춘 것 같이 느껴질 수도 있어. 느리다는 걸 받아들여. 조금씩만 밀어 올리면 돼."


미리 정자세를 연습해서 몸에 익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데, 무거운 무게에 도전할 때는 이것이 수월하게 움직이지 않을 것임을 미리 알고 침착하게 계속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시작 전에 나에게 말해주곤 했던 것이다. 이번 건 어려운 게 맞다고, 멈춘 것처럼 느껴질 만큼 느릴 수 있다고.


나에게 한참 설명을 해 준 트레이너는 마지막으로 씩 웃으면서 덧붙이곤 했다.


I believe in you!
난 네가 할 수 있다고 믿어!


깔려 죽게 두지 않을 거지? 한번 더 약속을 받고 무게를 들 준비를 한다.




트레이너는 사람들이 자세를 무너트리는 이유는 그 상황이 '불편해서'라고 했다. 떨어트리면 큰일이 날 수 있을 만큼 무거운 중량 아래에 있는데, 이게 안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게 무섭고 불편하다는 거다. 그럴 때 우리 뇌는 일종의 패닉 상태에 빠지고, 다른 길이 없는지 찾아보려고 이상한 동작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정도가 가장 맞는 길이다. 프로 선수들이 이상한 자세로 무게를 드는 걸 본 적이 있는가? 결국 정자세를 지키는 게 가장 힘을 잘 낼 수 있는 방법인데, 불편하다고 아무렇게나 해버리는 것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쇠사슬 벤치프레스!


벤치 프레스를 하면서 바벨이 몸통에 닿게 내려왔을 때, 밀어 올리려고 애를 써 봐도 그것이 영영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이 오곤 했다. 그럴 때 약간 패닉이 오면서 빨리 어떻게든 해버리고 이 상황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정말로 들었다. 들어질지 아닐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아무렇게나 해치워 버리자. 일종의 자포자기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트레이너가 옆에서 해주던 이야기.


Keep grinding. Stick to the plan.
계속 조금씩 밀어내. 계획대로 해.


실제로는 몇 초 안 될 것이나 부담스러운 무게 아래에 있을 때는 아주아주 길게 느껴지기도 하는 그런 순간, 불편함에 못 이겨서 자세를 무너뜨리려 할 때에 이 원칙을 기억한다. 조금씩 밀어내다 보면 가장 어려운 구간을 지나 무게가 쑥 올라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경험을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기로 한다.


계획대로 한다고 늘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포자기해서 아무렇게나 해서 된 적은 없었다. 무척 느리더라도 계속 밀어낼 때에만, 계획대로 계속할 때만 해낼 수 있었다.


나는 다른 수렁에 빠졌을 때도 이 원칙을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다. Keep grinding, stick to the plan.


삶의 지혜들은 단순한데 왜 꼭 체험을 해야만 내 것이 되는 걸까? 현재에 집중해라. 순간적으로 안 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해서 쉽게 그만두지 말아라. 꼼수 부리지 말고 정도를 가라. 정말 못 하는 것인지 그저 불편한 것인지 구분해라. 도전이 클수록 어렵고 느린 게 당연하다. 계획대로 계속해라. 너 자신을 믿어라.


이전 08화 스마트폰 의존에서 빠져나오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