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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의 빛 강성화 Apr 14. 2022

맥콜 한 캔, 사탕 세 개, 그리고 수줍은 그의 웃음

매주 나를 기다리는 한 남자가 생겼습니다

매주 수요일 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곳이 있습니다. 친한 친구가 한국 무용을 배운다고 하니 아이도 같이 다니고 싶었나 봅니다. 같은 아파트에 살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인데 1학년 때 같은 반이라 더 친해졌습니다.


2학년이 되어서는 서로 다른 반이 되어 함께 놀 시간이 많이 없었습니다. 다른 건 못해도 그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은 마련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원 수업 스케줄도 바꿨습니다.


지역의 종합사회복지관에서 배우는 한국 무용 수업. 무용을 마치고 까르르 웃으며 손잡고 가는 두 아이들을 볼 때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저녁이라 배가 고플 시간인데도 둘은 항상 헤어지기 아쉬운 연인처럼 집이 가까워지면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양쪽 엄마들이 한 번씩 번갈아가며 이름을 부르면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발걸음을 재촉하곤 합니다.


<  둘의 우정 오래 간직하렴  >




그곳 풍경이 익숙해질 때쯤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2주 전 오는 길에 사탕을 사서 들고  자주 보는 분들에게 인사를 하며 사탕을 나눠 주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복지관 직원이 아닌데도 항상 제가 앉는 테이블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있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몸은 온전히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이 미처 그 몸을 따라가지 못한 듯해 보였습니다.


직원분들에게 먼저 드리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웃으며 사탕을 건넸습니다. 고작 사탕 세 개일뿐인데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는 고맙다는 인사를 세 번이나 했습니다. 수줍은 듯 환하게 웃는 그를 보니 제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넸던 날이었습니다. 저를 향해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난히 마음에 남았습니다. 집과 복지관에서의 생활이 일상의 전부인 듯한 그의 삶이 그려졌기 때문인가 봅니다.


낯선 이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별것 아닌 사탕 세 개. 어쩌면 그의 삶엔 그 사소한 것들이 특별한 무언가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볼 때마다 항상 무표정했던 그의 얼굴이 무장해제된 것을 보면서 작으나마 그에게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줘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도 그에게 줄 사탕 세 개를 들고 갔습니다.


그는 복지관에 들어서는 저를 보자마자 먼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습니다. 웃을 때 드러난 그의 치아는 그날따라 마치 오는 길에 보았던 벚꽃잎을 닮아 보였습니다.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저는 주로 '좋은생각'을 읽습니다. 그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책을 꺼냈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테이블 아래 쇼핑백에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며 왼쪽으로 기울어진 그의 모습.


느낌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가 지금 왜 그런 것인지.. 저는 준비했던 사탕 세 개를 먼저 꺼내 웃으면서 그에게 건넸습니다. 그제야 그는 쇼핑백에서 음료수를 꺼내 수줍은 웃음을 지으며 저를 향해 손을 내밀었습니다.


지난번에 사탕 너무 고마워서요.
제가 사탕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정말 맛있었어요.



세상에.
그래서 이걸 준비했어요?
예전에 좋아했던 음료수였어요.
덕분에 오랜만에 마시겠네요.
정말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 맥콜, 사탕, 아이가 주운 벚꽃, 그리고 그의 마음 >


그와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다고 양해를 구한 후 그의 뒷모습을 한 장 찍었습니다. 쑥스러워했지만 싫지 않았나 봅니다. 사진을 찍은 후 그에게 다음번에 올 땐 다 읽은 을 가져다줄 테니 심심할 때 읽어보라 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또다시 벚꽃이 피었습니다.

< 올해 핀 벚꽃이 더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기를.. >




그에게 줄 을 골랐습니다. 마음에 드는 글이 있어 버리지 않았던 책자들 중에서 벚꽃 사진이 있는 표지가 가장 예쁜 것으로 준비했습니다. 책갈피로 사용할 포토그래퍼가 찍은 엽서도 한 장 준비했습니다.


최근 지인이 선물해준 엽서였습니다. 그중에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바다 풍경을 담은 것으로 골랐습니다. 그에게 조금은 다른 풍경과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 조금은 다른 풍경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


그는 이번 주도 저를 어김없이 환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전 준비해 갔던 책과 사탕을 그에게 건넸고, 그는 잠시 후 제게 음료수를 건넸습니다.


세상에.
이걸 또 준비한 거예요?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요.
마음만으로도 충분해요.
돈 아껴서 정말 필요한 일이 있을 때
그때 써요. 알았죠?


지난번에 주신 사탕이
정말 고마워서요.
제가 사탕을 좋아해서요.
정말 맛있었어요.


그와 잠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올해 34살인 그는 아니나 다를까 매일 이곳에 온다고 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전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보다는 핸드폰 보는 것에 익숙했을 그. 핸드폰을 보다가도 가끔씩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들마칠 시간이 되자 도서관에 들렀다 온다던 아이 친구 엄마가 왔습니다.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이들 수업이 끝났습니다. 집으로 가기 위해 문을 나서는데 밖에 서있던 그가 인사를 했습니다.


그와 인사를 나눈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녀가 말했습니다.


언니, 그 사람이
언니 나오길 기다렸나 봐요.
언니에게 인사하려고 그런 것 같았어요.


초여름을 방불케 했던 한낮의 더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비 온 후 바람이 몹시 불었던 꽃샘추위에 옷깃을 여몄던 날이었습니다. 비와 바람에 벚꽃은 모두 떨어졌지만 그의 얼굴에서 보았던 벚꽃잎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듯합니다.


< 음료수를 준비하는 동안 그의 마음이 잠시나마 즐거웠기를.. >


< 덕분에 행복했다, 내년에 또 보자 >



written by 초원의

illustrated by 순종

그림 속 사귐 - Daum 카페 :  '그림 속 사귐'에서 순종님의 다양한 그림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Always be happy!*^_____________^*





* 오늘의 추천곡 *


폴킴의 '봄눈'

https://youtu.be/9pxwEdcPzFs


이소라의 '바람이 부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G9u8TShlA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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