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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 이모야 Apr 25. 2022

괸당이 무신(뭐)?!

그리운 이웃사촌

제주에 내려와 동네 삼촌을 도와 귤밭을 돕다 보니 겨울이 세 번이나 지났다. (제주는 성별 구분 없이 살갑게 지내는 어른들을 다 삼촌이라 부른다. 밥집 이모 같은 느낌이랄까)


주변 사람들 한테 주문 몇 개나 받아주던 애송이가 이제는 수확해서 택배 하는 건 물론이요, 서투르지만 혼자 약도 치고 전정도 하고 파쇄까지 하는 초보 농부가 되었다.


자연에서 하는 일이 좋아 힘에 부쳐도 신나서 했다. 그런 나를 예쁘게 본 토박이 삼촌이 100평 남짓한 작은 귤밭의 관리자로 임명해주셨다. 무상임대의 대가로 어마어마한 삼촌 밭 품앗이를 해야 했지만 꿈에 그리던 내 밭을 이렇게라도 가지니 뭔가 뿌듯했다.


밭이 자전거로 10분 거리라 종종 들여다보러 간다. 작은 야채 텃밭도 있어서 배추랑 감자니 호박이니 이것저것을 심어놔서 더더욱 자주 간다.


하루는 차를 끌고 밖에 나갔다가 야채밭에 물을 주러 잠시 들렀다.


머하러 완?내가 이 집 괸당 인디.....


동네 할망이 진한 사투리로 말을 거셨다. 못 보던 웬 처자가 밭에 기웃거리니 어디서 보고 있다가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밭까지 쫓아오신 거다. 뭐라 뭐라 더 말씀하셨는데 이제 막 제주어 초보 딱지를 뗀지라 아직 모르는 게 많다.


순간 괸당(제주사투리. 친척/외척)사촌이었는지 이웃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서 머뭇 거렸지만 원래 밭을 관리하시던 토박이 삼촌 이름을 말하니 모든 의심은  한방에 해결되었다. 젊은 사람이 관리하니 좋다고 까지 말씀해주셨다.


사실 제주 정착 초기에 제주섬 특유의 배타 문화가 부담스러웠다. 혈연, 학연, 지연이 굉장히 심한 좁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나는 다행히 마당발 토박이 삼촌과 친하게 지내서 안 되는 일처리 없이 척척 해결되는 마스터키를 얻었지만 사실 외지인들한테는 굳이 허락해주지 않는 일들도 꽤나 빈번하다.


Photo by Sookyong Lee

나도 응답하라 1988 같은 시절을 살았다. 결이 비슷한 동네 주민들이 모여 엄마들은 계도 하고 방문판매도 이것저것 불러들였다. 그 시간 애들은 밖에서 뛰어놀다 어느 한집에 그득히 차려진 간식을 먹었다. 바쁜 아빠들은 매주 토요일 저녁 다 같이 모여 앉아 동양화 감상과 함께 일주일간의 회포를 푸셨다. 잘못한 일은 모른 척해주셨지만 축하받고 칭찬받을 일은 어른들 수만큼 몇 번이고 듣는 장점이 이었다.


그야말로 어느 집에 어떤 살림이 있는지 훤히 다 아는 이웃사촌이었다. 물론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안부만 전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사는 제주의 시골은 아직도 그랬다. 같은 동네 사람은 진짜 친인척 아니면 이웃사촌이었다. 환갑 즈음 넘은 어르신들은 이 동네 일은 서로 다 알고 알고 싶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남의 일도 내 가족 일 마냥 태평양 오지랖을 펼치는 경우도 생긴다.


나 혼자 사는 게 익숙해지니 이런 관심이 질색이다가도 가끔씩은 정겹다. 어쩌면 그동안 그 어릴 적 이웃 간의 관심과 정이 그리웠을지도 모르겠다.



시골이라 그런지 아직 나눔의 정이 많이 남았다. 감사하게도 사철 야채니 과일이니 어떻게든 얻어먹게 된다. 그럼 나는 시골에서 접하기 힘든 서양식, 젊은이 식 음식으로 변신시켜서 그분들께 대접한다. 옛날 우리 엄마가 이웃들에게 정을 나눠졌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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