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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 이모야 May 10. 2019

뭣이 중헌디

새까맣게 타버린 맘이 초콜릿볼을 만나기까지

5월 11일은 초콜릿볼의 날(chokladbollensdag, 후클라드볼렌ㅅ다겐)이다. 


일반적으로 탁구공만 한 크기에 초콜릿 가루(kakao, 커-꺄우)와 버터(smör, 스뫼ㄹ), 오트밀(havregryn, 하브레그륀) 등을 넣어 반죽한 것에 코코넛(kokos, 코쿠-ㅅ)이나 우박설탕(pärlsocker, 팰-속켈)으로 마무리하는 클래식한 피카(fika, 피카) 간식 중 하나이다. 지금은 금기어가 되었지만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속칭 깜둥이 볼(negerboll, 네-겔볼/ 이하 흑인 볼)로 불리다 지금은 직설적 표현인 초콜릿볼(chokladboll, 후클라드볼)이라 불리고 있다.


단지 초콜릿을 넣어서 매혹적인 초콜릿 색을 띤 것뿐인데 왜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 'neger'을 붙였을까.


이 초콜릿볼의 기원은 2차 세계대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3년, 밀가루가 넉넉하지 못했던 스웨덴에서 오트밀(귀리)을 대용품으로 활용한 '아이들의 흑인 볼'(barnens negerbollar, 바넨ㅅ 네-갤볼랄)의 레시피가 한 책자에 소개되었는데 이를 초콜릿볼의 시작으로 본다. 스웨덴에서는 라틴어 'niger'에서 유래된 단어 'neger'를 17세기경부터 사용하였는데, 그 이후 스웨덴뿐만 아니라 독일이나 스위스 등 다른 유럽지역에서도 검은색(svart, 스바-ㅌ)의 음식이나 상품에 이 단어를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Negerboll'은 1986년 Swedish Academy 단어 리스트에 등록되었으나 인종차별을 야기하므로 사용을 중지하라는 스웨덴 언어위원회 의견에 따라 2015년 삭제된다. 2006년에 'chokladboll'이 공용어로 등록된 지 딱 10년 만의 일이다. 사실 이 초콜릿볼은 코코넛 롱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아 코코넛 볼(kokosboll, 코쿠ㅅ볼)이라 통용되고 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간혹 일부 베이커리에서 초콜릿볼을 'negelboll'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여 이슈가 되기도 했었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진 단어가 되었다.


반면, 덴마크에서는 동일한 레시피의 간식을 오트밀 볼(havregrynskugle)이라 부르나 초콜릿으로 덮인 또 다른 간식에 negerboll과 동의어인 flødebolle을 사용하고 있다.


출처: linneasskafferi.se




나의 첫 svensk chokladbollar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심심한 스웨덴 일상에 몸부림치던 나는 스웨덴 친구 한 명을 소개받았다. 오페어 하던 집에서 쓰는 말은 한정적인 데다 눈치가 늘어 가족들의 말은 비교적 쉽게 알아들었기에 스웨덴어 연습도 할 겸 친구도 만들 겸 꽤나 설레는 일이었다.  


휴일 11시에 만나자 했으니 나는 당연하게도 점심과 차 한잔을 예상했다. 그 친구는 동네 구경시켜준다는 명목 하에 영어와 스웨덴어를 섞어가며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설명해주고 다녔다. 그다지 재밌거나 유익함과는 거리가 있는 그야말로 영양가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향연이었다. 동네를 뱅글뱅글 돌며 걷고 또 걸었고 그 친구의 이야기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사실 지난 이틀 동안 여기저기 다니느라 내 만보기는 3일 연속 2만 보를 갱신하는 중이었고 내 머릿속엔 영어와 스웨덴어 용량 초과로 인한 과부하 상태여서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아침부터 먹은 것이 고작 물 한잔뿐이라 머리는 멍했고 다리는 찢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4시간을 훌쩍 넘겨 하늘이 울긋불긋 해 지는 시간이 되어서야 기차역으로 향했다.

- 아니, 여기까지 불러놓고 어쩜 차 한잔 마시자는 말을 안 할 수 있지? 빨리 집에나 가야지


다시는 이 친구와 연락할 일이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내 마음을 읽은 건지 갑자기 근처 카페로 나를 안내하는 게 아닌가. 내가 사람을 성급히 판단했음에 괜스레 민망해서 의미 없는 말 꺼냈다. 

-  애ㄹ 롱 쾨(Det är en lång kö./ it is a long queue.)

 

일곱 명쯤 서있는 카운터 앞으로 줄을 섰다. 지갑은 들고 있었지만 한 시간이나 걸려서 온 나에게 혹시 차 한잔 정도는 대접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올라왔다.


그 친구는 차 한잔과 빵 하나를 주문했다. 본인 꺼였다.


자, 이제 물어보란 말이다.

봐ㄷ 빌 듀 드릭까?(Vad vill du dricka? / What do you want to drink?)

Vad vill du ha att dricka?[봐ㄷ 빌 듀 하 앳 드릭까] 도 같은 표현


그러나 계산은 순식간에 끝나버렸고 점원은 영수증이 필요하냐며 크빝또?(kvitto? / receipt?)를 묻고 있었다.

빌 듀 하 크빝또? (Vill du ha kvitto? /Do you want a receipt?) 대신 kvitto? 라고 짧게 묻는 경우가 많다


아... 진짜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오는데 한 시간 걸리는 본인 동네서 보자고 11시에 불러냈으면서 밥은커녕 커피 한잔도 없이 나를 그렇게 끌고 다닌 건가. 밥은 먹었냐 묻지도 않고. 어쩌면 서로의 끼니를 챙기며 인사하는 한국문화 덕에 '당연한 것'이라는 사고의 틀에 갇히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머니가 가벼운 워홀러였기에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닥까지 떨어진 당 충전을 위해 비교적 양이 많은 라테와 그중 저렴한 초콜릿 을 주문했다.


chokladboll _ Photo by Emoya

- (나) 야ㄱ 스쿨레 빌야 하 엔 라떼 오ㅋ 엔 후클라ㄷ볼 (Jag skulle vilja ha en latte och en chokladboll / I would like to have one latte and one chocolateball)


- (점원) 노곹 아낫? (Något annat? / Anything else?) 


- (나)네이 탁 (Nej tack. / No thank you.)

네이 뎃 애ㄹ 브라, 탁 (Nej det är bra, tack)도 자주 쓰는 표현


- (친구) 야ㄱ 배탈라ㄹ 뎃 (Jag betalar det / I will pay for you)

야ㄱ 타ㄹ 뎃 (Jag tar det)으로도 자주 쓰임



기대치가 이미 바닥을 찍어서였을까, 전혀 예상치 못한 대사였다. 순간 카드기에는 그 친구의 카드가 꼽혔고 나는 당황해서 아무 말 못 하다 허공에 Tack tack을 내뱉었다.


Jag betalar det _ Drawing by Mimmi


햇살 좋은 창가에 자리를 잡아 나는 자그마한 초콜릿 볼을 조금씩 아껴먹으며 당 충전을 했고 그 친구는 또다시 엄청난 수다를 시작했다. 내가 주문한 초콜릿 볼이 원래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그 친구가 어떤 얘기를 했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색이고 이름이고 뭣이 중 하랴, 맛있으면 장땡이지!

Just it is good!

Bara det är gott!!
[바라 뎃 애ㄹ 곹]



초콜릿볼 에피소드로 스웨덴어 되새기기

이모야가 글 쓰고, 밈미가 그림 그리고 올라가 검토해줘요

※ 본 매거진 내 글과 그림, 사진의 무단 도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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