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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 이모야 Mar 26. 2022

살 찌게만 하소서

보기만 해도 설레는 셈라

고운 밀가루로 만든 빵이 귀하던 중세 시대.


단식을 시작하는 사순절(fastan, 파스탄)의 첫날이자 재의 수요일을 맞이하기에 앞서 마지막 호사를 누리고자 챙겨 먹던 셈라(semla, 쎔라)라는 음식이 있다. 북유럽과 독일,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발칸 접경국의 공통된 식문화이며 기름진 화요일(fettisdagen, 페티스다겐)에 먹는 풍습이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현재는 스웨덴식 셈라가 가장 유명하다.


기름진 화요일 하루 전날을 파란 월요일(blåmåndagen, 블로몬다겐) 또는 빵 월요일(bullmåndagen, 블몬다겐), 돼지고기 월요일(fläskmåndagen, 플래스ㅋ몬다겐), 소시지 월요일(korvmåndagen, 코ㄹ브몬다겐)이라고까지 한다니 사순절에 앞서 몸 좀 키워 두려는 의도가 마구마구 풍긴다.


사순절(påsk, 포스크) 전, 사순시기 47일을 앞둔 파란 월요일과 재의 수요일 사이의 화요일을 기름진 화요일이나 사순 화요일, 하얀 화요일이라 한다.


투박하지만 기본에 충실한 둥글 납작한 빵에 속을 파고 씹히는 맛이 좋은 아몬드 페이스트(전에 소개했던 칼로리 폭탄 마시판과 유사하지만 당도가 훨씬 낮다)를 채운다. 그리고 그 위를 부드러운 크림으로 가득 메운 후 마지막으로 슈가파우더로 장식하는, 상상만 해도 기름기에 살이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그야말로 기름진 화요일에 찰떡인 음식이다.


스웨덴 셈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유명해진 이유는 바로 스웨덴 왕 아돌프 프레드릭(Adolf Frederick)의 일화 덕분이다. 그는 1771년 2월 12일 화요일, 왕으로서는 조금 어이없는 죽음으로 왕좌를 내려놓았다. 날이 날인만큼 작정하고 기름진 화요일을 즐기며 과식한 탓도 있겠으나 뜨거운 벽(hetvägg, 혜-ㅌ베ㄱ) 스타일의 셈라를 14 접시나 먹고 소화 문제로 졸도하여 죽은 것이다. 정말 14개나 먹었는지 확인할 바가 없지만 적어도 그가 얼마나 셈라를 좋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많이 먹고 죽은 귀신이라 때깔도 좋으려나.


단어 semla는 fine flour를 뜻하는 라틴어 'simila'에서 변형된 것이다. 나라마다 이름이 다르거나(fastlagsbulle: 덴마크나 노르웨이, 독일 등, laskiaispulla:핀란드) 빵이나 내용물(페스츄리나 잼 등)이 다르기도 하다. 셈라를 따뜻한 우유에 넣거나 끓여먹는 hetvägg(혜-ㅌ베ㄱ, hot wall) 스타일도 있는데 덴마크에 인접한 독일의 한 지역에서 'hetwegge'라고 부르던 것의 유래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뻑뻑한 빵을 조금 더 부드럽게 먹으려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사실 셈라는 재의 수요일 전날 딱 하루만 먹을 수 있는 레어템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크리스마스 이후부터 보이기 시작해 부활절까지 쉽게 접할 수 있는 시즌 리미티드가 되었다. 마트는 대략 20kr, 카페나 베이커리는 빵 크기에 따라 35~55kr 정도 한다.

 

Semla

 마트에 파는 것도 꽤나 먹을만하며 고전을 고수하면서도 빵이나 크림, 장식에 새로운 변화를 주는 시도가 늘고 있다. 구성이 간단하기 때문에 재료의 조합에 따라 가격과 맛이 엄청 좌우된다. 그래서 빵과 크림과 아몬드 페이스트의 조화가 어떤 결과를 내는지는 먹어봐야 안다. 이 시즌에 스웨덴이나 북유럽에 있다면 카페, 베이커리 별 셈라 투어를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살찌는 건 오롯이 당신의 몫!

< 셈라 먹는 법 >

1. 뚜껑 빵을 들어 크림을 양껏 퍼먹는다.

2. 빵이 손에서 사라지면 밑동을 손으로 들어 와구와구 먹는다.

3. 차가운 셈라에 따끈한 우유나 쌉싸름한 커피를 곁들이면 금상첨화!!!


나는 셈라 먹고 죽지 않아!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
.



지난 스웨덴 워킹홀리데이 중에 발견했거나 궁금했던 스웨덴 생활과 문화에 대해 공유하고 있습니다. 글 내용과 관련한 스웨덴어는 별도의 블로그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셈라 관련 에피소드(feat. 스웨덴어 공부)


 본 매거진 내 글과 그림, 사진의 무단 도용 금지

이모야가 글 쓰고, 밈미가 그림 그리고 올라가 검토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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