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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현 Jan 13. 2024

프리즘

사랑은 우리에게 색으로 된 나이테를 그려준다.

 표현이 많았던 형 때문인지 어린 시절 엄마는 늘 나를 보고 잔정이 없는 아이라고 했었다. 나 역시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했었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었지만 20대 초, 첫 연애를 하게 되면서 나는 우리 형제에게 닮은 점이 하나 더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 안 어디에 그런 살가운 표현들이 그때까지 잘도 숨어 있었는지 나조차 궁금했을 정도였으니까.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알게 해주는 것 중 사랑만 한 것이 있을까? 항상 같아 보이는 빛 안에 사실은 수많은 색이 있으며 그 색들이 모여 하나의 빛을 이루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프리즘처럼 사랑은 자신이 몰랐던 수많은 자기의 모습을 자신에게 비추어 알려준다. 그래서일까, 사람은 사랑을 한 번 하고 나면 많이 달라진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사랑으로부터 알게 되는 나의 새로운 점을 모두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못했다. 상대의 색을 읽어가는 것에도 급급한 나머지 나의 새로운 색들을 제대로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심지어 밝은색만 골라보려 했었고 어두운색은 부정하거나 가리고 싶었다. 빛을 가린다고 빛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렇게 여러모로 서툴렀던 나는 사랑과 그 사랑의 대상을 아프게 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난 지금, 나의 빛들을 모두 다 알게 되었다거나 그 빛들에 완전히 익숙해졌다는 건 아니다. 나를 어느 정도 다 알았다고 생각해 있다가도 새로운 사랑을 마주하면 그 사랑은 처음 보는 색을 내 안에서 끄집어내 주곤 했고 여전히 어떤 색들은 낯선 색이었다. 때론 어떤 사랑은 내 안의 밝은색을 더 진하게 해주었고 어두운색은 연하게 해주어 나를 변화시키기도 했다(그런 사랑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나는 몇 번의 사랑에도 계속 비치는 색들을 보며 밝은색들은 감사하게 여기기로 했고, 어두운색들은 인제 그만 인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알아갈 수 있었다. 

 사랑은 우리에게 색으로 된 나이테를 그려준다. 진해서 쉽게 눈에 띄는 색이 있는가 하면, 어떤 색은 연하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또 새로 생겨 선명한 색과 오래되어 바래진 색들까지 더해진 이 나이테를 지닌 채 우리는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선다. 사랑의 프리즘을 들고 다닐 수 있어 상대의 나이테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나와 가장 비슷한 색을 가진 사람을 쉽게 알아볼 수만 있다면. 하지만 나무의 나이테를 보려면 밑동을 잘라야 알 수 있는 것처럼 빛의 나이테는 사랑을 비춰줘야 그려지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의 색을 쉽게 알 수가 없다.

 얼마 전 퇴근하면서 무지개를 봤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차를 한쪽에 멈춰놓고 길가에 내렸지만 사진 속 무지개는 두 눈으로 본 것만큼 선명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혹시 그때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색을 비춰주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줍게 자신의 색을 저 하늘에 비추며 고백을 하고 있으리라. 그래서 옛날 사람들도 뜻밖에 무지개가 생기는 그런 날을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늦었지만 그 고백을 응원한다. 당신의 색이 더욱 아름답게 빛이 나기를. 





글, 사진 :: 임성현

Insta :: @always.n.all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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