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은유 <쓰기의 말들>, 박준 시집
오늘부터 새벽독서에 들어간 긴장감을 좀 내려놓기로 했다. 지난 3주간 새벽독서의 습관을 들이기 위해 나를 좀 모질게 밀어붙였다.
출근 전 3:30분의 시간을 어떻게 운용해서 써야 하는지 다시 재점검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3주 동안 기존 연재를 계속 미루고 있어서 마음이 계속 쓰인다.
읽어야 할 책이 있는 것처럼 지금 내게는 써야 할 글이 있다.
<엄마의 유산>의 다음 이야기를 공저하기 위해 글 한 편을 한 달간 쓰고 수정하고 있다.
7월 출간이 목표이므로 글에 더 매달려야 한다.
새벽독서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1:30분 만에 끝내고, 나머지 1:30분에서 2시간을 글 쓰는 시간으로 뺄 것이다.
써야 할 글 먼저 쓰고 쓰고 싶은 글도 쓸 것이다.
친구와 1:1 독서로 매주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을 한 챕터씩 읽기로 했으므로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부분을 읽기 시작한다.
내가 여러 출판사의 <월든>중에서도 열림원의 이 책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책에 삽입된 1800년대 후반과 1900년 초의 월든의 주변 풍경사진이었다. 사진을 보면 마치 내가 그 흑백 속의 시골풍경에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첫 줄부터 마음에 든다. 나랑 생각이 비슷해서 미소가 지어진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이르면 우리는 모든 장소를 집터가 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중략) 나는 어디에 자리를 잡든 거기서 살 수 있었고, 따라서 풍경은 나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중략) '그래, 여기라면 살아도 졸겠어!'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서 한 시간 동안 머물면서 여름과 겨울을 살아보고, 어떻게 하면 몇 년을 보내면서 겨울을 이겨내고 봄이 오는 것을 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장차 그곳에 살게 될 사람들은 어디에 집을 짓든지 자기보다 먼저 그곳을 집터로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믿어도 좋다.". (120면)
나도 워낙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언덕배기 빈 땀만 보면 소로처럼 집 한 채를 뚝딱 짓고, 계절의 풍경을 상상하고 그 안의 내 삶을 그려본다. 가끔은 그 상상 속에서 계속 살기도 하고.
하지만 소로는 "그 땅을 어떻게 과수원과 숲과 목초지로 분할할 것인 자, 문 앞에는 어떤 멋진 참나무와 소나무를 남겨둘 것인지, 어디서 보아야 말라버린 고목들이 가장 근사해 보일 것인지를 정하는 데는 오후 한나절이면 충분했다. 그런 다음 나는 이 땅을 휴경지로 묵혀두었다. 그냥 내버려 둘 수 있는 것이 많을수록 그만큼 더 부자이기 때문이다."
소로는 할로웰 농장을 사려다 농장주의 마음이 바뀌어 위약금을 받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 위약금을 그들에게 돌려주고 자신은 "나는 내 가난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고도 잠시나마 부자 노릇을 해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곳의 풍경을 마음속에 간직했고, 외바퀴 수레가 없어도 그 후 해마다 그 풍경이 생산하는 것을 가져왔다. 경치에 관한 한.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윌리엄 쿠퍼의 시를 인용한다.
"나는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의 군주이며, 그런 내 권리를 문제 삼을 자는 아무도 없다."
소로는 시인과 농장주의 이야기를 빗대어 말한다.
"시인은 농장의 가장 귀중한 부분을 즐기고 물러가는 것을 자주 보았지만, (중략) 시인이 오랫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훌륭한 울타리인 시의 운율 속에 그의 농장을 집어넣고, 그것을 완전히 가둔 채 젖을 짜고(...) 크림은 모조리 자기가 가져가고 생크림을 제거한 탈지유만 농부에게 남겨놓았지만, 농부는 까맣게 모르고 있다."(122면)
이 글이 말하는 것은 정작 자신이 소유하거나 속해 있는 환경 속에서 그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충만하게 느끼는 자에 비해 어리석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 내 주변의 모든 것의 군주가 되어보자.
자연은 매일 나에게 내 눈길 닿는 곳에 선물을 놓아둔다.
그 모든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자연의 선물이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알아차리고 기뻐하는 자는 극히 드물다.
자연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선물에 감탄하는 이들에게 줄 다음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은유 <쓰기의 말들>을 펼친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글에 관한 문구를 소개하고 은유 작가의 생각을 한 페이지씩 덧붙인 형식의 책이다.
시간 없을 때 휘리릭 마음에 드는 문장을 펼쳐서 읽어도 좋고 차근히 앞에서부터 읽어도 좋다.
오늘 내가 가져온 문장은 "우리가 힘을 얻는 곳은 언제나 글 쓰는 행위 자체에 있다" - 나탈리 골드버그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책의 저자로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은 이 책을 이미 알고 있고 읽어본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 책을 사지 않았다.
읽기보다 수집하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쉽게 살 수 있지만 사지 않았다.
아마 제목에서 풍기는 강한 글쓰기의 고뇌, 고통을 아직은 알고 싶지 않아서일지 모른다.
나는 아직 '당신도 쓸 수 있어, 하루 세줄!' 이런 식의 책이 더 맞는 사람이기에.
그저 글쓰기 초보인 나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제목 만으로도 두려워 벌벌 떨고 있다...
예스 24 장바구니에 다시 이 책을 검색해서 넣어놓고 구매하기 버튼은 아직 누르지 못한다.
언제쯤 글쓰기의 깊이를 탐험하고 싶어 질까.
그날이 최대한 빨리 오면 좋겠다.
은유 작가는 글쓰기를 "이 잔혹한 육체노동!"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힘들거나 도망하고 싶을 때 술을 마시거나 하염없이 걷는 것으로 도피하는 것은 일시적일 뿐 홀가분하거나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녀가 글 쓰는 에너지를 획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말하는 것은 바로, "글 쓰는 것" (35면)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글이 힘들어서 도망가려고 별짓을 해봤자 소용없다는 것.
결국은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글 쓰는 것"만큼 몸의 감각을 "쓰기 모드로 활성화"시키는 좋은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결국 글에서 도망가지 말고 글 쓰는 행위 자체를 계속하라는 것.
그래서 나도 오늘 뭔가를 쓰기 위해 8:30분까지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을 것이다.
출근하는 남편은 내가 25일 차 새벽독서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그런데 내가 아침마다 읽고, 글을 쓰며 3시간 30분 동안 책상에 앉아있는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다. 대단하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나 이렇게 열심히 하니까 나중에 내 공간 시작할 때 말리지 말고 꼭 응원해 줘.
나처럼 쓰고 그리고 만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공유공간!
그냥 농담 아니고 진심이니까!!
오늘 왠지 든든한 응원군을 얻은 것 같다.
잠시 그 응원군이 훗날 후원자도 되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글에서 "엄마"에 대한 글을 쓰고 많은 분들의 위로와 격려를 받았는데 일일이 답장을 달지 못했다.
울분을 토하듯 써 내려간 글을 다시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음이 좀 차분해지면 그때 답글을 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선 응원의 글 남겨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이곳에서 대신 전한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여러분...
오늘은 말랑한 마음에 시 한 편을 보탠다.
내가 좋아하는 박준 시인의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는 시집을 휘리릭 넘긴다.
눈길이 멈춘 곳은 "종암동"이라는 시.
엄마를 잊으려고 시집을 펼쳤는데 아빠를 데려오는 오묘한 순간이다.
종암동
박준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어느 날 내 집 앞에 와 계셨다
현관에 들어선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눈물부터 흘렸다
왜 우시냐고 물으니
사십 년 전 종암동 개천가에 홀로 살던
할아버지 냄새가 풍겨와 반가워서 그런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었다
나는 시에서 10년 전 갑자기 하루 만에 돌아가신 아빠를 떠올린다.
그리그 그 아빠의 아버지, 나의 친할아버지도 떠올린다.
어제 글에서도 잠시 내 마음속에 부유해서 떠다녔던 나의 할아버지.
검게 타고 깊게 파인 주름, 굵은 손마디 사이에 끼워진 담배.
그 담배를 입안에서 보다 허공 속에서 더 태우던 할아버지.
본인 아들 발목 잡은 애물단지라고 나를 쳐다도 안 보던 할머니 대신 젖먹이 나를 등에 업고 친척집으로 젖동냥 다녔던 나의 할아버지.
내가 커서 한 유일한 효도는 할아버지를 내 무릎에 눕히고 귀지를 파드린 일이다.
고된 세상사와 본인에게 무심한 세월의 증표처럼 보이던 할아버지의 딱딱하게 굳어버린 진노란 귀지.
그 귀지를 파내며 "와~~~ 엄청 커요. 할아버지~ "하며 신나 했던 일.
"워매, 시원하다... 인자 니 목소리 겁나 잘 들려~" 하시던 할아버지.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는 귀지가 또 한가득 쌓였을 것 같은데 내 꿈속에 시간내서 놀러 오시면 좋겠다.
왕건이 귀지를 신나게 파드릴 수 있는데....
아... 어쩌면 이제 아빠가 할아버지께 무릎베개를 내어주고 귀지를 파드리고 계시려나?
묵뚝뚝한 아들과 묵뚝뚝한 아버지가 부디 그곳에서는 서로 의지하고 지내셨으면 좋겠네...
서로 귀지를 파주는 다정한 사이로.
참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열림원 2022. 10쇄
참고 > 은유 <쓰기의 말들> 유유 2019. 12쇄
참고>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