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30일 차] 내향적 펼쳐짐, 나를 살린 책

김주환 <내면소통>, 류시화 엮음 <한 줄도 너무 길다>

by 윤서린

700페이지 넘는 <내면소통>을 읽고 있다.

유튜브에서 3시간짜리 영상을 보아도 될 것을 굳이 굳이 두 달 넘게 꾸역꾸역 몇 장씩 읽는다.

왜냐하면 내가 스스로 내린 독서처방에서 "읽어야 할 책"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나의 새벽독서는 "읽어야 할 책"으로 시작해서 "읽고 싶은 책"으로 마무리를 한다.


긴 우울증으로 집중력이 떨어져서 책을 읽지 못하고 산 세월이 20년이 넘었다.

이제야 겨우 우울증에서 벗어나 몇 장 읽기 시작하는 독서초보자.

그저 쉽게 잘 읽히는 책 위주로 채워지는 하루도 좋지만 내가 전혀 관심 없는 분야, 혹은 어려워서 접하기 꺼려지는 분야의 책도 조금씩 읽기로 마음먹고 읽고 있다.


<내면소통>도 그런 책이다.

전혀~~~~ 내 책장에 꽂힐 일이 없는 뇌과학 인문학 책.

그저 제목만으로 "아.. 그렇구나"하고 넘어갔을 책.

"내면소통"이 뭔지는 궁금해서 후기나 유튜브로 영상을 찾아봤을 책.


<내면소통>에서는 본론에 앞서 뇌과학 이야기만 300페이지를 할애하는데 빨리 그 방법이 알고 싶어도 꾹꾹 참으며 건너뛰지 않고 읽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너무 쉽게 알아버리면 "내면소통"은 내 삶에 제대로 스며들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김주환 <내면소통>

드. 디. 어. 오늘 <제6장 내재적 질서와 내면소통>을 부분을 읽는다.


* 기계론적 세계관을 벗어나야 내면소통이 보인다

[기계론적 세계관과 우주의 기본질서]


내면소통의 핵심 개념은 '내재적 질서'와 '내향적 펼쳐짐'이다

(281면)


작가는 우리가 익숙한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야만 "내면소통"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실재하거나 본질적인 것은 모두 더 작은 구성요소이며, 부분이 모여 전체가 만들어진다(282면 참고)는 '외향적 펼쳐짐', 기계론적 세계관을 갖고 살아간다.


그럼 기계론적 세계관이 뭘까?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우주를 봤을 때, 태양, 지구, 금성 등이 실재하는 것이고, 태양계는 인간이 만들어낸 추상적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것. 부분들의 인과관계를 통해서 전체 현상을 설명해 내는 것.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이 말하는 '내면적 펼쳐짐'이란 무엇일까?

기계론적 관점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구체적인 실체는 부분이 아니라 항상 '전체로서의 우주'다. '부분'이 오히려 인간이 자의적으로 나눈 추상적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실재하는 것은 태양계이지 태양과 행성이 아니다. 태양과 행성이라는 구분 자체가 인간의 자의성이 반영된 개념적 틀에 불과하다. (...) 부분이 모여서 전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는 본래 하나로서의 전체다. (282~283면)


"우주의 기본질서는 부분들이 외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바깥으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우주가 내향적으로 펼쳐져 들어가는'것으로 보아야 한다. 전체로서의 우주는 '외향적 펼쳐짐'을 하지 않고 안으로 말려 들어가고 접혀 들어가는 '내향적 펼쳐짐'을 한다. (...) 내면소통 이론 역시 모든 소통을 인간의 의식에 내향적으로 펼쳐져 들어가는 질서로 파악한다." (28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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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엮음 <한 줄도 너무 길다>


내가 집중력이 떨어져서 텍스트 자체를 읽지 못할 때 나를 살린(?) 책이 있다.

바로 류시화 시인이 엮은 일본 하이쿠 시집 <한 줄도 너무 길다>


25년 전에 지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인데 수차례에 이사를 겪으면서도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책이다.


하이쿠!

한 줄의 시로 사물의 본질, 자연의 감동, 인간의 내면과 삶을 표현한 시.

계절에 따라 읽는 이의 마음과 처한 상황에 따라 매번 다르게 읽히고, 매번 깊어지는 감동을 선사하는 시.


"시"를 쓰고 싶어 하는 나에게 가장 강력한 끌림을 주는 시의 형태.

'언젠가 나도 이런 시를 쓰고 싶다!'의 표본.


오늘은 이런 내 보물을 몇 개 꺼내 읽어본다.


여름이면 떠오르는 시!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 물리다니!

_이싸


여름에 모기에 물린 자국을 벅벅 긁다 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시.

모기에 물릴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

아! 나 살아있네! 아! 올해에도 모기에 물릴 수 있다니! 감탄하다가 문득,

나는 몇 번이나 모기에 물리는 여름을 살 수 있을까, 하면서 급 숙연해지도 하는....

결국에는 모기에 물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자는 다짐으로 가슴에 남는 시.


장담컨대, 이 시를 읽은 당신은 모기에 물릴 때마다 이 시를 떠올릴게 될 것이다!


시는 감동받고 잊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생활에서 잠잠히 피어오르는 것!!!



목욕한 물을
버릴 곳이 없다
온통 벌레들 울음소리

-오니츠라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_바쇼

여름을 대표하는 하이쿠 중에 이싸의 "모기"와 바쇼의 "매미"시가 당연 압권이라 할 수 있다.

모기로 피식 웃고, 매미로 가슴이 아린다.


내 안의 내가 텅 비어버린 것 같았을 때, 바쇼의 시는 나를 많이 위로해 줬다.

아끼고 아끼는 나의 책.

이제는 절판이 되었지만...


류시화 시인이 <한 줄도 너무 길다> 이후에 새롭게 두꺼운 하이쿠 모음집을 선보였지만 난 이 책을 참 좋아한다.

한 지면에 시가 단 두 편. 그 여백의 미. 부연설명을 책 뒤편으로 배치한 것도 신의 한 수다.

시의 여백은 내 안에서 메아리로 울릴 수 있는 감동을 배가 시켜준다.


여러분들 마음에도 여름의 "하이쿠"가 소낙비처럼 내리길....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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