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39일차] 형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빛의 리듬

김주환 <내면소통>, 한강 <빛과 실>

by 윤서린



김주환 <내면소통>

[유기론적 세계관과 전체적 움직임]


유기론적 세계관이란?

유기론적 세계관은 우주를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로서의 전체로 파악한다.

그 덩어리는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도저히 인식할 수 없는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를 포함한 전체다.

(298면)



우주는 텅 비어 있음으로 꽉 찬 공간이다.


(302면 참고)

우주는 '텅 비어 있음으로 꽉 찬' 공간이다. 우주의 에너지 일부가 뭉친 '들뜬상태'가 광자나 전자와 같은 입자처럼 보이는 것이고, 반대로 에너지가 흩어져 약한 부분이 '진공상태'인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한강 <빛과 실>


오랜만에 다시 한강 작가의 <빛과 실>을 펼친다.

앞부분에 줄 쳤던 부분을 다시 읽는다.

그리고 줄 치지 않았던 부분을 다시 읽고 줄을 친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나는 밑줄이 더 이상 밑줄의 의미를 잃게 되는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녀의 글은 그렇다.


그녀의 눈빛처럼 그윽하고 슬프지만 심연의 다정함이 녹아있다.

그래서 그녀의 목소리톤과 말투, 억양, 말의 속도를 생각하며 문장을 읽는다.


책이 너무 얇은데 책에 여백이 많은데도 단 번에 읽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아주 천천히 입안에서 밥압을 녹여 탄수화물의 당을 최대한으로 느낀 후에 밥압을 삼키듯이 그렇게 그녀의 책을 아껴 읽는다.


하지만 차마 아직 그녀의 소설을 덮인 상태에서 다시 열지 못하고 있다.


오늘 읽은 부분은 그녀의 한옥집에 있는 작은 마당의 정원이야기다.

북향에 위치한 폭 40센티미터, 길이 180센티미터의 작은 정원.


그곳에 심어진 미스김라일락, 청단풍, 불두화, 옥잠과 호스타와 맥문동.

강한 햇빛이 없어도 자라는 아이.


하지만 한강 작가는 조경사의 한마디에 이들에게 작은 탁상용 거울 여덟 개를 마련한다.


여기는 종일 빛이 없잖아요


그동안 그녀가 살았던 공동주택에서 온전한 빛을 느끼지 못했던 그녀는 마당의 정원의 나무들에게 거울에 반사되는 햇빛을 쐬여주면서 비로소 햇빛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들에게 햇빛을 주는 날이면, 그녀는 역시나 섬세하게 약 15분에 한 번씩 거울의 각도와 위치를 바꿔주며 나무들에게 햇빛을 선물한다. 지구가 자전하는 속도의 감각을 그렇게 익혔다고 한다.


또한 계절에 따라 햇빛의 각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거울을 배치하는 위치를 약 사흘마다 조금씩 바꿔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지구가 공전하는 속도의 감각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다는 한강 작가.


거울로 햇빛을 붙잡아 북쪽 정원에 비추면 그 벽에 "빛의 창문"이 생긴다고 한다.

더 이상 포집한 빛이 없을 때까지 작가는 글을 쓰다가도 멈추고 15분마다 거울의 위치를 바꿔준다.


그렇게 내 정원에는 빛이 있다


"남쪽으로 비치는 햇빛을 주는 거예요. 거울로 반사시켜서.

그렇게 내 정원에는 빛이 있다." (96면)


"이 일이 나의 형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을 지난 삼 년 동안 서서히 감각해 왔다. 이 작은 장소의 온화함이 침묵하며 나를 안아주는 동안. 매일, 매 순간, 매 계절 변화하는 빛의 리듬으로. " [2022], (97면)


그녀의 책 표지에 그녀가 찍은 "빛의 창문"이 있다.

나는 사물, 자연의 "그림자"를 찍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면에서 그녀와 내가 정반대인 것도 같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빛"과 "그림자"의 존재를 모두 감각하기에 어느 순간 "빛"이 "그림자"로, "그림자"가 "빛"으로 전환되는 시기도 올 거라 믿는다.


아마 한강 작가도 한옥 집으로 이사 오면서 햇빛에 대해 알게 됐다 말했듯이 나도 제대로 "빛"을 바라보는 날이 온다면 그녀처럼 근원적인 기쁨으로 "빛"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이전 18화[새벽 138일차] '터널 시야'에 빠지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