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한바탕 앓아야 한다면

[읽고 쓰기 180일 차]. 발터 벤야민 <고독의 이야기들>

by 윤서린

며칠 전 우리 동네 독립서점에 들렀다가 책 선물을 받았다.

발터 벤야민 <고독의 이야기들>


몇 달 전 이곳에서 1:1 독서모임을 한 후 두 번째 방문이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독서모임에서 글쓰기 이야기로 넘어갔고 그러다 소설이야기가 나왔다.

책방지기가 권해주신 책들은 유명한 단편소설 작가들의 책이었다.


주춤하다가 내가 소설을 못 읽는 진짜 이유를 설명하게 됐다.

새벽독서글에도 언급했듯이 나는 소설을 읽으면 쓰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힌다는 걸.

책방지기는 쓰고 싶으면 쓰면 되지 않냐며 나에게 김동식 소설집 <회색인간>을 권한다.

그분도 주물공장에서 일하며 소설을 썼다고.

내가 구상 중인 몇 가지 소재를 이야기했더니 꼭 글을 써서 세상 밖으로 내보내야 된다고 내게 응원의 말해주었다.


읽고 싶었던 <혼모노>, 책장 바닥 구석에서 발견한 요조와 임경선의 편지글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회색인간>, 그리고 선물로 주신 필사책과 <고독의 이야기들>를 안고 집에 돌아왔다.


사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들 때문에 일어서야 했다.

산책 후 피곤했던 초등 5학년 막내아들이 기다리다 지쳐서 의자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책방지기는 낮시간 서점이 조용해서 글쓰기 좋다며 꼭 오라고 말한다.

나는 문득 이곳에서 글을 쓰는 모습과 몇몇 사람들 앞에서 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상상을 해본다.


새벽에 일어나 선물해 주신 책을 읽기로 하고 첫 글을 읽었는데 어질어질하다.

작가의 상상력을 이렇게 구성해서 글로 쓰는 게 소설이구나.

현실과 환상의 뒤엉큄.


내가 쓰려던 건 무엇이었을까?

나는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온몸에서 힘이 빠진 나는 독서기록을 쓰지 못하고 그만 앓아 누었다.


오후 8시 겨우 일어나 시어머니와 늦은 저녁을 차려 먹고 독서기록을 마무리하기 위해 노트북을 펼친다.

앓아누워도 독서기록은 쓰고 다시 눕자는 마음으로 읽고 쓰기 180일 차 아침의 기억을 더듬으며 기록한다.


발터 벤야민 (1892-1940)

독일 출신 유대계 언어철학자, 문예학자, 비평가, 예술사와 심리학을 공부했다.

유물론적 사유와 유대 신학적 사유, 신비주의와 계몽적 사유 사이에 미묘한 긴 강을 유지하는 가운데 아방가르드적 실험 정신에 바탕을 둔 글을 써나가며 '좌파 아웃사이더' 지식인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1940면 미국으로 망명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지만 프랑스-스페인 국경 통과가 좌절되자 그날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고독한 이야기들>은 이성과 환상을 넘나드는 꿈의 알레고리, 이동과 여행 중에 발휘되는 상상력, 어린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인간 언어의 가능성, 유희 공간 및 유희 활동의 중요성 등을 아우르는 작품이다.


발터 벤야민 <고독한 이야기들>

[실러와 괴테 : 어느 문외한의 비전]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어떤 인도자를 따라가며 만나는 신비로운 여러 풍경과 스쳐가듯 만나는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다.

환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글의 묘사를 따라 나도 미지의 그곳을 조심스레 뒤따라 가는 느낌.


"어두운 안쪽에는 마치 심연으로부터 솟아오른 듯한 황량한 바위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바위가 무너져 내릴 때 생긴 틈새들을 오물과 흰 눈이 채우고 있었다. (...) 왕들의 그림자가 있었고, 슬퍼하는 여자들이 있었고, 어느 동굴 앞 아담한 초록 풀밭에서는 그림자처럼 아름다운 안개 요정들이 둘러앉아, 헐렁한 털가죽을 걸치고 사람처럼 포효하는 이상한 사자를 조롱하고 있었다. 나는 발길을 돌렸다. 그날 밤에는 왠지 겁이 났다. 그래서 지헤로운 부엉이의 언덕으로 갔다." (15면)


그는 밀랍과 철필을 놓고 앉아 천천히 글을 쓰는 "최초의 문필가, 호라티우스"를 만난다.

그때 회녹색 성직자 후드를 쓰고 달아나는 작은 난쟁이는 본다.

그는 17세기 독일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오피츠"였다.

인도자는 달아나는 난쟁이를 잡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 이렇게 중얼거린다.

"수집품으로 삼고 싶었는데"


(이 문장을 읽고 깜짝 놀랐다. 보통 유명한 예술가나 작가를 친구로 삼고 싶다고 하지 수집품으로 삼고 싶다고는 하지 않는데 이 문장은 작가의 마음이 솔직하게 투영된 걸까? 이렇게 자기 욕구에 솔직해질 수 있다니 이것이 소설의 힘인가?)


"한 번씩 정적이 흘렀고 그럴 때마다 괴로움, 그리움, 즐거움으로 찢어진 거센 목소리가 비집고 나와 별들에게까지 닿았다. "클롭슈토크의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인도자의 말이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18면)


"풍경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 우리는 도망치면서 바닥에 떨어진 월계관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보았다. 우리 뒤에서는 메피스토펠레스(독일 전설로 내려오는 악마적 존재,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한다)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 불쑥 메피스토펠레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명랑하고 조롱 섞인 나지막한 목소리는 "어머니들한테 가게?"라고 묻는 듯했다." (22면)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독일의 여러 문학가와 작품 속 등장인물을 만나는 여정을 보여준다.

나도 가끔 좋아하는 작가나 예술가를 직접 만나보고 싶어 하는 마음에 그들과 어울려 티파티를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신비한 여행기처럼 그들을 찾아가는 상상은 아직 해보지 못했다.


발데 벤야민의 상상처럼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라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피라미드나 다른 신비로운 신전에 모여사는 건 아닐까? 여전히 그곳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고 써 내려가며.


이 작품은 벤야민 생전에는 발표되지 않았다고 한다.

집필 시기는 1906년에서 1912년경 사이로 알려진다.


100년도 넘은 그의 작품을 읽으며 우리의 인간들의 상상력은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더 신비롭게 변했는지 궁금해진다.


드디어 내일 뭔가를 써서 올리기로 약속한 날이 다가온다.

머릿속에서는 여러 구성들이 뒤섞여있는데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여간해서 풀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행이라면 첫 시작 부분과 끝부분은 내 손가락 끝에 묶어두어서 더듬거리며 글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글쓰기에 있어서 단편소설이 어차피 한 번은 앓고 지나가야 하는 상사병 같은 것이라면 이제는 피하지 말고 끙끙 앓아 털어내고 싶다.


지금 내 안에 일렁이는 이야기와 상상들은 1년 후, 10년 후, 어떤 식으로 다른 누군가에 의해 또 다른 상상력으로 이어지게 될까? 그런 생각에 사로잡힐수록 나는 더 앓고 앓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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