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작가의 글을 읽으며 작가의 낡지만 오붓한 풍광의 집을 내내 상상했다. 창으로 밝고 투명한 햇빛이 내리고, 해가 질 때면 유리잔 속 물에 노을까지 담길 것이다. 작가는 그 어룽지는 노을이 원고에 비칠 때 긴 기지개를 켜고서 어수선한 좁은 골목들을 산책할 준비를 할 것이다. 어느 길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가 떠올라 걷지 못한대도 작가의 따스함이 담긴 시선은 닿지 않을 곳이 없었을 것이다.
백수린 작가님의 작품이 수록된 단편집을 읽은 적 있다. 사랑의 시선이 이다지도 담백할 수 있을까 했는데, 작가님의 삶의 결과 글이 다르지 않아서 그렇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 작가님의 집과 동네와 삶의 방식, 글쓰기 등에 대한 다양한 글들을 읽으면서도 감동받았지만, 아무래도 강아지 봉봉에 대한 헌사로 보일만큼 한없는 사랑이 가득해서 눈물이 차올랐다.
얼마 전 외삼촌이 십오 년 이상을 키우던 강아지 콩순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콩순이는 아주 착하고, 통통하고, 똑똑하고, 기특하고, 세상 어디서 본 시츄보다 예쁜 시츄였다. 사실 콩순이의 원래 이름은 "콩이"인데, 나 혼자 콩순이라고 불렀다. 콩순이가 왠지 더 귀여운 것 같아서. 심지어 콩순이의 중성화 전 성별은 수컷이었다. 아무튼 나는 콩순이를 안 이후로 지금까지도 혼자 꿋꿋이 콩이를 콩순이라고 부르고 있다.
삼촌이 지하철 역전에서 한 할머니가 작은 강아지들을 박스에 넣고 한 마리에 3천 원인지 5천 원인지 팔고 있는 걸 보고 불쌍해서 사 온 것이 콩순이와의 첫 만남이었다고 한다. 우리 외가 가족은 광해, 지키미라는 시츄를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키웠었고 그 뒤를 콩순이가 잇게 된 것이다.
콩순이는 내 손에 들어올 정도로 정말 작았고, 어렸을 땐 털이 더 짙은 색이었다. 콩순이 100일 적에, 아주 작은 새끼 강아지였을 때, 콩순이가 나와 둘이 있었는데 갑자기 토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 작은 생명체가 순식간에 죽어버릴까 봐 엉엉 울면서 삼촌에게 여러 번 전화했던 것이 생각난다. 다행히 그러고도 15년은 더 산 기특한 강아지 콩순이.
콩순이는 우리 외가 가족 모두가 사랑한 유일한 강아지였다. 콩순이가 혼자 화장실에서 쉬를 하고서 간식을 달라고 기대하는 표정을 짓던 모습. 고구마 간식을 많이 먹어서 남산만 해졌던 배. 턱 부정교합 때문에 늘 삐죽 나와있던 분홍색 혓바닥. 산책을 가고 싶으면 자기가 알아서 가지고 오던 목줄. 자기도 강아지면서 강아지들을 무서워해서 다른 강아지를 만나면 숨던 모습. 아주 작은 강아지였던 때 가족 전체 외식을 해야 하는데 혼자 두고 갈 수 없어서 몰래 작은 가방 속에 넣어갔는데 그 가방 안에서 새근새근 자던 모습. 이번 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서도 약기운이 돌아 멀쩡하니 모든 가족들에게 가서 인사를 하던 기운찬 강아지.
사실 아직 콩순이를 생각하면 저항 없이 눈물부터 난다. 콩순이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이해할 수 없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은 정말 이해할 수도 없고 말이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곳. 콩순이의 없음이 내 다른 것들의 부재의 예상마저도 두렵게 하지만 그래도 콩순이가 주었던 기쁨과 행복이 슬픔만으로 덧입혀지는 것은 싫기에... 이 책을 읽으며 봉봉이 작가님에게 알려준 사랑과, 콩순이가 나에게 알려준 사랑이 같다는 걸 간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고여있지 않고 반드시 큰 물결로 흐르게 된다는 것도...
콩순이는 삼촌의 강아지였지만, 우리 집에는 참깨와 앙꼬라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산다. 너무도 따끈하고 부드럽고 착한 줄무늬 고양이들. 그들의 매일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으로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