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새진 Nov 01. 2024

[서평] 랑과 나의 사막-천선란


    랑은 인간이다. 사막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조를 잃고 자신의 목숨마저 잃어버리고 마는 인간이다. 열에 약하고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물을 아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마른 모래에 물을 끼얹는 인간이다.


    '나', 고고는 로봇이다. 사막의 모래정돈 살갗에 틱틱 부딪혀 나가는 몸을 가지고 있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도 두렵지 않고 물에 대한 갈망도 느끼지 않는다. 감정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고 안다와 모른다만을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고고는 랑의 머리를 묶어줄 수 있는 열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있다. 기억의 한 구석에서 그리움을 불쑥 끄집어내는 회로가 있다. 자신보다 팔을 필요로 하는 타인(로봇이긴 하지만)에게 팔 한쪽을 건네는 이타심이 있다.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남은, 목적의 시간이 있다. 고고는 목적지를 정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목적지를 향해가는 선택을 한 로봇이다. 그 선택은 랑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부터 나왔다.


    인간은 나약하다. 혈혈단신으로는 사막의 모래 폭풍도 이겨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사막에서 살아간다. 선인장의 신에게 안녕을 기원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늘을 나누어주면서, 신화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이것들은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한다. "희망"만은 척박한 땅에서도 마르지 않는다.

    

    고고는 그런 인간과 함께하며, 마음을 얻는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메마른 모래에 끼얹어지는 물처럼, 증발하는 것 같은 희망 속에서도 피어나는 선인장처럼 마음을 일궈낸다.


    천선란 작가는 늘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을 창조해 낸다. 그 오랜 뒤에 인간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뛰어넘어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사는 인간을 보여준다. 나는 이 미래를 믿고 싶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사랑과 연대의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남을 살게 하는 인간의 모습. 우리가 가진 강력한 힘을 믿고 싶다.


    나는 이제 생존에 다정함이 가장 큰 무기라는 걸 안다. 그리고 믿는다. 그 증거로써 이 책을 읽고 싶다.




이전 02화 [서평] 밝은 밤-최은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