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페퍼민트, 경우 없는 세계까지... 백온유 작가님의 글이 가진 흡입력과 무게감이 점점 깊어지는 것 같다. 작가님의 작품들은 사회 안에서 청소년들이 직면하는 문제들을 청소년 개인의 시선에서 풀어내면서도 사회 전반에 내밀하게 관여하는 느낌이 든다. 거시적으로도 미시적으로도 놓치는 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이번 경우 없는 세계를 읽으면서 흔히 "가출팸"이라 불리는 가출 청소년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데, 단순히 '일상 사건 늘어놓기' 같은 느낌이 전혀 없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건 아무래도 작가님이 사건이나 배경을 인물이라는 실로 엮어내기 때문이 아닐까? 배경에 치중하고 인물을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성연, 인수, 경우를 포함한 여러 인물들이 주도하는 상황이 우선적으로 제시된 후, 사건이나 배경은 그에 따라 존재하게 되어 더 몰입할 수 있었다.
가출청소년, 비행청소년이라는 인식…. 나도 어느새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법을 개정해서 촉법소년 연령을 대폭 하향하고, 무조건 강력한 처벌을 해서 초장에 정신머리를 단단히 잡아야 된다는 의견에 가끔 나도 모르게 동의의 주억거림을 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다들 알다시피 청소년의 비행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불우한 가정, 그릇된 교우관계, 개인적 성향…. 하지만 그 어떤 비행청소년도 태어날 때부터 비행을 저지르겠다고 다짐하며 태어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이 살면서 처음 부닥치는 어떤 난관들은 아직 미성숙한 자아를 왜곡된 방식으로 표현하게 만들어 버린다. 물론 모두가 그런 방식으로 표현하진 않겠지만, 같은 상황에서 나라고 그렇게 하지 않을 자신도 없다.
청소년들은 피터팬이 아니다. 그들은 백 년 만 년 청소년 상태에 답보하지 않는다. 그들도 자라 어른이 될 것이다. 그들은 지난날의 비행을 후회할 수도 있고, 자신의 왜곡을 바로잡을 기회조차 뺏어버린 어른을 원망하며 더 비뚤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기회를 만들어 줄 수는 없어도 기회를 빼앗지는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교직에 있다. 말썽을 부리는 학생들이 이해되지 않기도 하고 가끔은 얄미워 보일 때도 있다. 실제로 내가 학교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을 고르라면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가 상위권일 것이다. 잘잘못을 떠나서 정말 '왜' 그러는지 동기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하여튼, 왜냐고 물어보면 다들 자기만의 이유들이 있다. 이유를 듣다보면 이해가 갈 때도 있다. 그럼 그때는 그 이유에 걸맞은 제대로 된 표현 방식을 다시 알려주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어른의 역할이자 권한이니까. 그리고 그것이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기회를 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니까. 어른의 권한을 그들의 가능성을 외면하거나 박탈하는 방식으로 사용하기만 해서는 안되니까. 경우가 없는 세계라도 인수가 이호에게 손을 내밀었듯이.
흔히 폭력은 답습된다고들 하는 말은 굳게 믿으면서 온정이 퍼져나가는 것은 잘 믿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한 명이라도 내가 내미는 손길에 위로를 느낀다면, 나는 내가 거절을 당하더라도 끊임없이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