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하게 된 지연은 희령이란 지역에 내려와 살게 된다. 지연의 엄마와 외할머니가 사이가 좋지 않아 아주 어렸을 때를 빼곤 할머니를 만날 기회가 없긴 했지만, 희령은 그 어렸을 적 할머니와의 즐거운 추억이 깃든 곳이었다. 그곳에서 할머니를 우연히 만나게 된 지연은 할머니에게 증조모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지연이 그 이야기에 빠져들며 할머니와의 관계는 점차 돈독해진다. 여러 세대가 연결되는 모녀의 이야기들 속에서 지연은 점차 이해할 수 없는 엄마를 이해해 보려 노력한다. 그렇지만 그 과정이 쉽진 않았다. 모녀는 상대의 상처를 집요하게 헤집고 찍어 누르기를 반복한다. 그러면서 마음 깊숙한 곳에 아무도 모르게 숨겨져 있는 그 상처의 근원이 결국 드러나게 되고 서로를 찌르던 칼날들도 무뎌지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꽉 들어찬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 감정은 나에 대한 모멸이 되기도 하고, 타인에 대한 전적인 비난이기도 했다. 또, 이제 흐릿해져 가는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작은 목소리 같기도 했고, 서른이 넘은 손녀를 아직도 내 강아지라며 품에 가득 안아주는 외할머니의 무른 품 같기도 했다. 이 책은 모든 운명 같은 만남과 순간 같은 헤어짐이 가져다주는 벅찬 마음들이 낱낱이 박힌 문장들로 가득했다. 몇 번이나 책을 덮어야 했을 정도로 벅찼다. 그냥 쉽게 말하자면 정말 최고였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읽으면 인간이 소설을 읽는 이유를 몸소 체감하게 된다. 책을 통해 주인공의 삶을 체험하면서도 그 체험이 다시 나를 관통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럴 때 느끼는 짜릿함이 '읽는 인간'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고조모와 증조모, 증조모와 할머니, 할머니와 엄마, 엄마와 지연으로 거슬러 내려오는 모녀의 관계가 거듭 등장하는 걸 보면서 자연스레 나와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모녀관계는 애증이라고들 한다. 나도 몇 번이고 괴로워했다. 엄마는 날 사랑하는데 왜 저렇게 말하지, 왜 나에게 상처를 주려고 안달인 걸까, 나는 엄마를 사랑하는데 왜 가까이 가기 두려운 걸까.
나는 엄마가 나를 미워할 리 없다는 걸 알아서 더 괴로웠다. 사랑하는 자식의 상처를 후벼 판다니 되려 더 나쁘다고 생각했다. 나는 도망쳤고 비뚤어졌고 엄마와의 관계는 위태로워졌다. 그러자 다시 엄마는 나에게 상처를 줬고 나는 다시 도망쳤으며 우리는 더 위태로워졌다. 나는 그 과정을 나의 20대 내내 겪어야 했다.
이 지난하고 잔인한 과정 속에서 엄마와 나는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소모했을까.
사실 나라고 엄마에게 상처 주지 않은 것도 아니면서 언제나 피해자 행세를 하고선 엄마를 일방적으로 힐난했다. 나는 엄마를 사랑했다는 방패막으로 나를 변호했다. 사실 엄마와 나는 다르지 않았다. 이제는 나도 '사실상 쌍방과실'이란 생각이 어렴풋이 드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엄마가 나를 낳았던 나이보다 열 살 가까이 많아지자 이제는 엄마와 오래된 친구가 된 기분이 든다. 엄마가 친구였으면 진작 절교했겠다고 하면서도 엄마가 없는 내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엄마가 엄마라는 상징 속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본인의 무게를 가늠해 본다.
나의 괴로운 20대 때 엄마와 나눴던 증오가 담긴 편지들은 여전히 내 서랍 속에 있다. 그마저도 추억이 될 것 같아 차마 버리지 못한 못된 말들이 다신 펼쳐지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