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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새진 Nov 10. 2024

4.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어렴풋이 처음 금주를 다짐했던 때가 떠오른다.


  술을 즐기는 부모님의 유전자 덕인지 대학생이 되고 방탕한 음주 생활을 즐기면서도 숙취를 겪어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는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필름이 끊기는 것. 이 고질병은 나를 수년째 따라다니며 음주를 후회하게 만드는 일등 공신인데, 금주를 처음 다짐했던 것도 이 고질병과 관련이 있었다.

     

  ‘남자친구는 늦게 만들수록 좋다.’라는 엄마의 단도리를 19년 동안 듣고 자랐던 나는 실제로 중,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남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딛게 되고, 기숙사에 살게 되어 부모님의 온실 속을 떠나게 된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연애라는 미지의 분야에 속절없이 빠져 버렸다. 나의 부모님은 연애 말고는 제한적인 요소가 없었고(심지어 나의 온갖 덕질을 이해하고 지원해 주시느라 바빴다.) 그 덕택에 나는 부모님에게 비밀을 만들 필요가 없는 자녀로 자라났다. 하지만 그런 허용적인 분위기에도 엄마가 내게 19년간 해왔던 “남자친구만은 절대 안 돼.”라는 말은 일종의 세뇌처럼 작용했는지,  연애를 시작하고서도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이 절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가 않았다.     


  비밀이 없게 자라난 내가, 이런 일생일대의 빅 이벤트를 지니고서도 부모님에게 말을 하지 못했다는 게 얼마나 답답한 일이었는지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내 첫 연애를 부모님에게 알리지 못하는 대신, 내 친구들에게라도 알리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다. (사실 그리 자랑할만한 남자친구도 아니었는데 첫 연애였으니 귀엽게 봐주자.)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고 술집에서 잠이 들어버리자, 친구들은 내가 그렇게 자랑하던 내 남자친구를 불러 우리 집에 데려다 주라는 미션을 주고 만다. 그리고 내 남자친구는 아주 기특하게도 미션을 완수했다. 덕분에 나는 눈 떠보니 집이었지만, 불행하게도 일련의 귀가 과정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너 어제 걔 누구야.”      


  엄마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엄마가 말하는 걔가 누군지 단번에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남자친구야?”

     “아니, 아니야. 같은 과 친구야.”

     “너 어제 대학교 친구 만난 거 아니잖아.”

     “어, 근데… 어쩌다 보니 불러서 같이 마시게 됐나 봐.”

     “너 어제 기억 안 나지? 딱 봐도 남자친구더만.”

     “…….”

     “너 엄마 몰래 남자친구 사귀니?”     


  혈중알코올농도가 채 0이 되지 않은 뇌는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없었다. 상황을 둘러댈 수 없게 되자, 어젯밤 술을 무진장 마신 나도, 나를 집에 데려다주라고 남자친구를 부른 친구들도, 나를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준 남자친구도 다 싫어졌다. 차라리 그냥 길바닥에 버리고 가버리지. 왜 꽐라 된 사람을 꾸역꾸역 집에 보내서 엄마한테 내 비밀이 탄로 나게 만들어! 남자친구는 오란다고 도대체 왜 온 거야! 나는 알코올 탓에 정상적인 사고 알고리즘이 원활히 작동되지 않아서인지 자꾸만 탓할 사람을 찾았다.      


  사실 어젯밤 나와 즐겁게 술을 마신 사람도, 나를 안전히 데려다주길 부탁한 사람도, 나를 집에 잘 데려다준 사람도 호의와 선의로만 가득했다. 결국, 절주 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이 사건은 술에 취해 수저를 바닥으로 떨어트리고 맥주잔을 깬다거나 왁자지껄한 술자리에서 갑자기 눈물을 흘려 자리를 숙연하게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내가 절대 비밀을 지키고 싶었던 사람에게, 원치 않은 때에, 원치 않은 방식으로 비밀이 폭로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비밀의 폭로자가 다름 아닌 '술 마신 나'라는 게 나를 매우 큰 고통에 빠트렸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연애를 한다는 것 자체가 하늘이 두 쪽 날만큼 큰일도 아니고, 우리 집에서나 회자될 만한 일이었으나 그 당시에는 그게 그리도 괴로웠다. 그동안 마주치면 즐겁기만 하던 술이라는 존재가 나의 자존감을 제대로 깎아내릴 수 있다는 걸 처음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말 그대로 술이 꼴도 보기 싫었다. 

     

  이게 벌써 십 년도 더 된 이야기다. 웃긴 건, 그렇게 꼴도 보기 싫던 술을 어떻게 다시 마시게 됐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보시다시피 수천 번의 금주 다짐을 글로 쓸 만큼 음주하는 날 반, 금주하는 날 반으로 살아가는 음주인(혹은 금주인)이 되었다. 금주를 다짐하는 패턴은 늘 비슷하다. 술을 마시고, 다음 날 후회하고, 금주를 결심한다. 술을 끊겠다는 말은 입버릇처럼 쉽게 뱉어지는 만큼 무게감은 가볍지만, 그 말이 가진 농도는 점차 후회라는 감정으로 짙어진다. ‘술 끊는다.’라는 말이 후회의 농도로 백 퍼센트 채워지는 날. 그날이 내가 진정으로 금주를 하게 되는 ‘언젠가’가 되지 않을까 하고 어렴풋이 예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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