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이 만든 따뜻한 여운.
출근길 버스 안에서 만나기 힘든 풍경을 보았다. 어떤 할머니 한 분이 타셨는데, 카드에 잔액이 남지 않은 걸 인지하지 못하고 타셨던 모양이다.
’ 잔액이 부족합니다.‘ 하고 단말기에서 낭랑한 여자 목소리가 쨍하게 울리자 주변의 공기가 삽시간에 서늘해졌다. 할머니는 우선 돈통과 가까운 자리에 자리를 잡으셨는데, 아니나 다를까, 기사 아저씨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 결제가 안 됐어요.‘
할머니는 잘 안 들리시는지 첫 번째 말에 대답을 하지 않으시다가, 이윽고 이어지는 두 번째 말에야 충전을 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어렵사리 덧붙이시고는 고개를 푹 숙이셨다. 한눈에 봐도 무언가 쉽지 않은 상황 같아 보여서, 도움을 드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찰나에 내 맞은편 1인용 좌석에 앉아 계시던 여자분이 갑자기 돈통 쪽으로 일어나 이동하시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다시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제 다 됐습니다.’
할머니는 그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못 들으셨는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하시던 작업에 열중이셨다. 이윽고 일어서시더니 천천히 앞쪽으로 이동하시고는 결국엔 카드를 찍으시더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 하고 탄식을 내쉬었다.
기사 아저씨는 ‘아 결제 이미 여자분이 하셨는데…‘ 하고 안타까워하시고. 순식간에 공기는 또 머쓱해졌다.
버스는 또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출발했다. 역 근처에 도착했을 때, 그 할머니와 여자분은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셨다. 문이 열리는 찰나, 할머니께서 그 여자분께 지폐 몇 장을 쥐어주려고 하시는 것이 보였다.
여자분은 구태여 아니에요, 아니에요. 하고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쉬익, 하고 문이 닫혔고, 이내 외부공기가 차단되며 내부 공기가 차 금세 따뜻해졌다. 나는 잠시 마음의 기온이 올라 따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모르는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푸는 마음, 그런 마음은 어떤 모양의 마음일지. 모르지만 알고, 알지만 모르는 마음이다. 그렇지만 그런 선의를 나도 기꺼이 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참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지폐를 받지 않겠다며 굳이 손사래를 치시던 여자분의 웃음과, 그때 머물던 잠시의 배려들이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덥혔을지.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엔, 이런 선의가, 더 특별하게. 그리고 더 귀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