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드디어 한국에서의 첫날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살이 왜 이렇게 쪘냐는 잔소리를 하셨다. 찌긴 쪘지. 나는 많이 먹는 것보다 잠을 잘 못 자면 살이 찐다. 어쨌든 앞으로 내가 격리와 돌아갈 때까지 생활을 할 부모님 댁 펜션의 객실 하나를 배정받았다. 잘 정돈된 침대와 반찬과 과일이 가득 찬 냉장고가 나를 반겼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편했다.
다음 날 아침,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와 함께 인제 보건소에 도착해서 간단한 인터뷰와 코로나 검사를 마쳤다. 모두들 방호복으로 꽁꽁 싸매고 계셨다. 지금까지 단시간에 꽤나 여러 번 코를 찔리면서 항상 불안했다. 지금처럼 검사키트가 있던 때가 아니라 결과를 기다려야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담당 공무원도 배정되었고 그분이 구호물품도 직접 배달해 주셨다. 지역마다 구호물품 구성에 차이가 있는데 뜯어보니 나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당시 구하기 힘들었던 체온계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타민 영양제까지 들어있었는데 이것도 모자라 며칠 뒤에는 진즉에 못 챙겨줬다며 과일을 한 바구니 가져다주셨다. 시골 인심에 또 한 번 반했다.
집순이에게 격리는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었다. 이미 한 달 가까이했는데 한국에서, 엄마 밥 먹으며 하는 격리를 더 못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내가 원하는 물건은 모조리 택배로 다음 날이면 받아 볼 수 있었다. 이때부터 미친 듯이 택배를 시키기 시작했다. 운동 용품, 다이어트 식품, 화장품, 그리고 짐도 대충 싸 온 터라 필요한 건 모조리 주문했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나의 불면증을 알고 계신다. 술을 잘 못하기 때문에 한두 잔 술기운을 빌려 잠을 청하곤 했다. 어느 날 저녁에는 이 또한 잘 알고 계시는 엄마가 와인 한 병을 넣어주셨다. 안 그래도 못 자는 딸 행여나 잠 못 잘까 봐 마셔 좋을 거 없는 술을 넣어주실 땐 어떤 마음이셨을까. 그렇게 못 자도 휴가 때 부모님 댁에 오면 거의 잠만 자다 가던 나였다. 그렇게 잠이 잘 올 수가 없다. 부모님 말로는 인제가 산소량이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아무튼 다행히 제 때 밥 먹고 방 안에서 나름 운동도 하며 부모님 댁이라는 특별한 환경 덕에 다시 잠도 잘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 격리가 끝났고 시간은 흘러 결국 나의 30일의 유급휴가도 모두 소진되었다.
그동안 회사의 담당 매니저와 계속 메일을 했다. 내가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동안 카타르 국경은 굳게 닫혔다. 도하로 돌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당연히 무기한 무급휴가로 전환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은 잠시, 자유를 맛본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괜찮았다.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 지인들을 만나러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면서 팬데믹 속에 아주 평범한 백수의 생활을 이어갔다.
3개월쯤 지나자 이런저런 걱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무급휴가인만큼 더 이상 급여도 들어오지 않고 이렇게 돈을 쓰기만 하면서 언제 돌아갈지 전혀 모르는 상태가 지속되자 불안감은 극도로 심해졌다. 나뿐만 아니었다. 한국에 있는 동료들 역시 같은 걱정이었다. '알바라도 해야지' 생각하다가도 '갑자기 내일 부르면 어떡하지? 다음 주에 부르면?' 다음 달에 오라고 해도 한 달 알바를 뽑아 줄 곳은 없을 것이며 이러한 시국에 알바를 채용할 곳도 없었다. 생각이 너무 많을 때 나는 두 가지를 한다. 독서와 걷기.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또 매일 부모님 댁 근처 강물이 흐르는 산책로를 걸었다. 이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또렷한 글자들, 초록초록한 나무들과 속절없이 흐르는 강물만이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나에게 말해주는 듯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걷기를 마치고 집에 들어왔다. 갑자기 방바닥이 빙글빙글 회전하며 귀에서 '삐-' 소리가 났다. 나의 왼쪽 귀와 코를 연결하는 관이 안 좋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건 좀 다른 느낌이었다. 일단 얼른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조금 지나니 괜찮아졌다. 저녁 뉴스에서는 코로나 확진자 수와 온통 코로나 소식뿐이었다.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막막했다. 그러다 항공사 관련 내용이 나왔다. 위기에 직면한 항공사들과 그로 인해 나와 같은 처지가 된 승무원들이 많았다. 모 항공사에서 해고된 승무원의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그녀는 이명 등 신체적 증상뿐만 아니라 우울감, 공황증세 등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 순간 '나도 아픈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둔하다. 몸이 반응하기 전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걸 잘 모른다. 그에 반해 내 몸은 꽤 예민한 편이다.
그렇다. 내 몸과 마음은 아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