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증? 트라우마?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
혼자만의 시간이 오면,
막연한 불안감이 슬그머니 찾아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혼자 예측하고 분개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싫다.
불안감이 극에 달할 때는 숨을 쉬기가 힘들고, 팔다리가 떨리기도 한다.
사소한 일이라도 사건이 생기면,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시간의 흐름을 따라 생각하고
그때의 말과 행동을 되짚어보며, 불안감이 커질수록 상대를 믿지 않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수준 안에서 모든 생각이 나오겠지만,
머릿속에선 뒤통수를 맞았던 경험이 쌓여 상상 속 상황을 반복해 재생하고,
육하원칙에 따라 추론을 이어가며 혼자 상처받는다.
일어나지 않은 상상 속의 일들이 정신없이 동영상 재생되듯 주르륵 흘러가면서
나의 기분이 영향을 받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물론 맞아떨어지는 일도 있기에 더욱 빠져들지만, 때로는 틀리기도 한다.
의심이 들면 그냥 확인하고 물어보면 되는데 사사건건 따지는 것도 싫고,
이야기하다 싸우는 것도 싫고, 싫은 소리 하는 것도 싫다.
불편한 감정들을 나눠야 하는 것이 싫어서 혼자 생각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내 생각이 반드시 맞는 것도 아니고, 오해할 때도 있다.
이러한 오해로 인해 상대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으로 비칠 때도 있다.
한 번 굳어진 결론이 점차 고착화되어 ‘내가 생각한 게 맞겠지’ 하고, 더 깊이 믿어버리는 내가 문제인 듯하다.
한 번은 카톡 친구가 너무 많아서 정리해야겠다 싶어서 목록을 보고 있는데,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연락을 안 하는 경우, 한 번씩 연락하는 친구,
오래된 친구들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나는 오랜 친구들과는 꾸준히 연락을 서슴없이 주고받으며 관계 지속을 하고 있었다.
다만 단기간 친해졌던 친구나, 친구 때문에 알게 된 지인들은 점차 연락이 끊겼고, 연락을 하고 싶지 않았다.
’왜 나는 그러는 걸까?’를 시작으로 나를 시간의 순서대로 생각해 보았다.
평소 습관처럼 나를 분석했던 것 같다.
이것을 인지하는데도 이런 나의 모습 덕분이라 씁쓸하면서도 나를 더 이해하게 된다.
단순하게 보면 편집적인 성향일지 모른다. 과거의 경험들이 트라우마로 남아 사람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불안 속에서 상황을 예측하려는 습관이 자리 잡은 것 같기도 하다.
편집증 환자들은 불안 속에서 대상을 의심하고, 망상을 통해 의심의 증거를 찾는다. 모든 사람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내가 의심하지 않고 믿고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내가 실수해도, 상대가 실수해도 단순하게 실수라고 인정하고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단 한 번도 불안감에 휩싸이지 않았던 사람은 누가 있을까? 그동안 나와 이별을 한 사람들은 나의 이런 생각들 때문에 멀어진 걸까? 나의 어떤 모습이 이기적으로 보였을까? 인간관계 안에서 너무 힘들었던 일들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걸까? 내가 진짜 편집증인 걸까?
요즘은 이런 나를 바꿔보려고 한다.
일어날지 모르는 일을 예측하지 않고, 단순하게 신뢰하고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순수하게 상대가 이야기한 단어 뜻 그대로를 믿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달라지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생각이라는 것이 날 때면 노래를 틀어두고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오디오북을 듣는다.
그것만으로도 불현듯 찾아오는 불안감이 줄어들었다.
기회가 되면 상담도 받아보려고 한다.
나를 방치하지 않기로 했고, 스스로를 돌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싫어하는 모습도 알게 되었으니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올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