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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암사자 Nov 06. 2024

“두콩아, 밥은 문 앞에 뒀다!”

소설 <동산리 히든 할매들과 만나다방> 11화

배달중.

손님이 가장 드물게 오는 시간. 주현은 만나다방 출입문에 나무 팻말 하나를 걸어두고 헬멧을 썼다. 출발하기 전, 사료를 잔뜩 담은 그릇을 들고서 두리번거리며 두콩을 찾았다. 1층과 2층, 마당까지. 두콩이 즐겨 누워있던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주현이 보기에 두콩에게도 나름의 정해진 스케줄인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루종일 코빼기도 비추지 않다가, 저녁때쯤 돌아와 쌓인 사료를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 그다음 날까지 수면부족에 시달린 것처럼 잠을 자는 식이었다. 어디를 가는 걸까. 주현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출입문 가까운 쪽에 밥그릇을 놓아두고, 허공에 큰 목소리로 외쳤다. 푸드덕,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던 새가 날아올랐다.


“두콩아, 밥은 문 앞에 뒀다!”


미리 챙겨둔 짐을 바이크 짐칸에 실었다. 대용량 개사료와 흙손. 지난번 영춘이 부탁해 사두었던 표영미에게 가져다줄 것들이었다.


“쭉 따라서 달려가다 보면, 마을 제일 끄트머리. 거기가 표영미 집.”


주현은 영춘의 설명을 떠올렸다. 동산리는 U자 형태로 높은 산이 둘러싸고 있고, 산의 양끝이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바닷길을 따라 쭉 달리기만 하면, 결국엔 산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도착하게 되었다.


주현의 바이크가 미끄러지듯 달려 나갔다. 금세 인적도, 인가도 드문 길이 이어졌다. 왼쪽에는 드넓게 펼쳐진 바다가, 오른쪽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밭이 이어졌다. 달리고 또 달려도 같은 풍경이 이어지는 것만 같았다. 러닝머신 위에서 힘껏 뜀박질을 해도 결국 제자리인, 그런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풍경들. 주현은 바이크 핸들을 당겨, 평소보다 더 높은 속도로 달렸다. 한결 더 날카로워진 바닷바람이 주현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길은 조금씩 좁아지다가, 이내 바다와 산이 맞닿은 부분에 이르렀다. 산으로 이어지는 얕은 언덕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이 좁은 흙길이었다. 길의 양옆으로는 바닷바람에 허리가 휘고, 키가 작은 나무가 울타리처럼 이어졌다. 나무가 있긴 하지만, 왼편은 바다로 이어진 낭떠러지에 가까운 곳이었다. 움푹 파인 길에서 몇 번이고 바이크의 바퀴가 헛돌 때마다 주현의 심장이 요동쳤다.


평탄한 길이 이어졌다. 주현은 하마터면 표영미의 집을 지나쳐 그대로 산 아래로 내려갈 뻔했다. 내리막길을 앞두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뒤를 보았다. 집은 없고, 높은 성벽 같은 담벼락이 우뚝 솟아있을 뿐이었다. 건물 2층 높이를 훌쩍 넘길 벽돌로 된 담벼락. 주현은 골목 한편에 바이크를 주차해 두고, 담벼락을 따라 한 바퀴 빙 돌았다.


“집이 아닌가?”


주현은 담벼락을 더듬어가며 다시 한 바퀴 더 돌기 시작했다. 출입문이 없었다. 위로만 뚫린 굴뚝처럼, 담벼락 안으로 통하는 방법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주현이 품에 안고 있던 사료 포대를 고쳐 안으며 뒤를 돌아가려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누구야?”


소리는 분명 하늘에서 들려왔다. 주현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 쪽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보였다. 담벼락 바로 아래에서 주현은 주변을 휘휘 둘러보고,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머리를 긁적였다. 잘못 들었나, 생각하던 때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데 남의 집 앞에서 기웃거려.”


소리의 근원지는 담벼락 위였다. 표영미는 나뭇가지 위에 앉은 부엉이처럼 담벼락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챙이 넓은 선캡을 쓴 표영미의 얼굴은 밝은 하늘과 대비돼 짙게 어둠이 깔려 있었다. 표영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지만, 주현은 어색하게라도 미소를 짓기 위해 애썼다. 자신은 무해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할 것처럼.


“누구냐니까?”

“… 사료입니다.”


치킨입니다. 족발입니다. 떡볶이입니다. 주현은 습관처럼 누구냐는 질문에 배달하려던 제 손에 든 물건 이름을 댔다. 만나다방, 영춘의 부탁, 배달, 이름은 최주현. 그런 단어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표영미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명희 사장 오토바이인데….”


주현은 묵직한 사료 포대를 낑낑대며 머리 위로 들어 보였다.


“만나다방에서 왔어요. 영춘 어르신이 이걸 가져다주라고 부탁을 하셔서.”

“저기요, 사료 씨.”

“저는 사료가 아니고….”

“사료 씨. 혼자 사는 사람 집 앞에서, 이렇게 기웃거리는 게 얼마나 위협적인 일인지 몰라요?”


위협적으로 남의 집을 기웃거리는 사람이자, 사료가 된 주현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허둥지둥 사료 포대를 내려놓았다. 하얗게 먼지가 피어올랐다.


“두고 가려했는데, 대문이 안 보여서요.”

“당신도 우리 집에 대문이 없어서 불만이에요? 이 마을 사람들은 남의 살림에 간섭 못해서 안달 났나.”


주현은 하마터면 죄송하다는 말을 할 뻔했지만,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간신히 삼켰다. 아무리 마을 사람들이 표영미의 살림에 간섭을 한다고 해도, 먼 길을 찾아온 사람에게 이렇게 대하는 건 너무 하지 않나. 주현은 사료 포대의 모서리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지긋지긋해 진짜. 내가 오죽하면 이랬겠어요?”


감정에 북받치는 듯, 표영미가 흙손을 쥔 손을 주먹질하듯 공중에 휘저었다. 굳지 않은 축축한 시멘트 덩어리가 진눈깨비처럼 주현의 머리 위에도 몇 방울 떨어졌다. 반쯤 깨진 흙손은 녹이 슬고 낡아 있었다. 담벼락에 위태롭게 매달린 표영미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어나갔다.


“귀촌을 왜 했겠어. 조용하게, 마음 편히 있을 데를 찾은 거 아녜요. 그거 아니면 이 외진 마을에 올 이유가 없잖아. 이사 온 다음날부터였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괴상한 할머니들이 함부로 마당에 들어오질 않나. 운동 가자, 물회 먹으러 가자, 체육대회 구경 가자… 그것뿐인 줄 알아요? 사람이 일을 해야 녹이 슬지 않는다고 막 잡아 끄는데, 속절없이 끌려갔지. 그 힘에 내가 어떻게 버텨.”


표영미는 양동이에서 흙손으로 시멘트를 퍼올렸다. 벽돌담 위에 펴 바른 뒤에, 새 벽돌 하나를 그 위에 지그시 눌러 얹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것 같은 담장이, 표영미가 얹은 벽돌 하나만큼 더 높아졌다. 표영미는 대체 언제까지, 얼마나 높이 담을 쌓으려고 하는 것일까. 주현은 궁금해졌지만 묻지 않았다. 표영미는 흙손에 남은 시멘트를 털어내기 위해 신경질적으로 양동이 모서리에 두드리며 털어냈다.


“그리고 다음에 배달할 때는 오토바이는 좀 멀리 대고 걸어오세요. 여긴 노인들이나 젊은 사람들이나 아주 몰상식해.”

“네?”

“하이엔드 프리미엄 리버뷰 골드 2차 아파트에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고. 거기 살 땐 입주민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이 말이야. 배달 오는 사람들이 줄줄이 아파트 입구에 주차를 해놓고 매너 있게 걸어와서 문 앞에 배송을 딱 해줬다고. 엔진 소리 한 번 들을 일 없이, 단지 안이 얼마나 조용했는데. 달달달달… 아주 그냥 여기 사람들은 선을 지킬 줄 몰라. 달달달달. 시끄러워 죽겠어.”


표영미는 주현이 듣건 말건 상관없이 계속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우리 영자도 나처럼 입맛이 고급이어서 유기농 그레인 프리 사료만 먹는다고.”


사료와 흙손을 다시 챙겨 들고 주현은 바이크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바이크는 표영미가 있는 곳과 반대편 담벼락에 세워두었다. 담벼락이 만드는 그림자를 따라 걷고 있다 보니,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때, 어디선가 작게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콩아. 여기서 뭐 해?”


담벼락과 바닥 사이에 난 작은 구멍으로 두콩의 머리와 앞발이 튀어나와있었다. 엉덩이 쪽이 걸렸는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인 듯했다. 언제부터 여기에 끼어 있었던 것일까. 주현은 구멍 가까이로 다가가 두콩의 몸통을 붙잡고 있는 힘껏 당겼다. 두콩이 요즘 부쩍 살이 오른 것 같더라니.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두콩을 붙잡은 채, 주현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두콩의 배 아래쪽 흙을 손으로 파내기 시작했다. 단단한 흙이어서 쉽게 부스러지지 않았다. 표영미에게 주려고 했던 흙손으로 흙을 부수며 한참을 앉아 파내자 약간의 틈이 생겼다. 두콩은 짧은 앞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힘껏 몸부림쳤다. 두콩의 엉덩이가 빠져나간 구멍에, 작은 빛이 새어 나왔다. 두콩이 거세게 몸을 털었고, 주현이 그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두콩이 빠져나온 좁은 구멍 사이로 표영미의 담벼락 안 쪽 집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의 자리를 자꾸만 의식하게 되는 것처럼, 주현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구멍 사이를 들여다보았다. 표영미의 집은 동산리의 여느 집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세심하게 관리하는 듯 높이가 일정한 잔디가 마당 한가운데 펼쳐져 있고,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단층 건물 지붕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긴 빨랫줄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이불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앞머리에 손가락 하나 크기 정도의 리본을 한 개. 주현의 눈이 그 개의 새까만 두 눈과 마주쳤다. 잘 관리된 긴 털이 샴푸 광고 모델의 머릿결처럼 햇빛 아래 부드럽게 찰랑거리는 장모 치와와. 두콩은 주현 앞으로 끼어들어 구멍을 경계로 담벼락 안의 개와 코로 인사를 나누었다. 또 올게,라는 듯.


“두콩이가 바쁜 이유가 여자 친구 때문이었구나.”


주현은 어쩐지 두콩과 치와와의 만남을 표영미에게 들켜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죄를 지은 사람처럼 좌우를 빠르게 살핀 주현이 한쪽 팔에는 사료 포대를, 또 한쪽 팔에는 두콩을 들었다. 최대한 민첩하면서도 조용하게 걸음을 옮겨 바이크 쪽에 이르렀다. 짐칸에 두콩과 사료, 흙손을 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시동이 걸리지 않은 바이크를 끌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내리막길을 한참을 따라 내려가고 나서, 담벼락이 보이지 않을 때쯤 시동을 걸었다. 어흥. 바이크가 큰 소리로 울자, 주현은 평소와 달리 흠칫 놀랐다. 짐 칸에 앉은 두콩의 눈빛이 어쩐지 슬퍼 보인다고 생각하며, 주현은 바이크의 속력을 높였다. 두콩은 배고픈 어느 밤처럼 ‘아우-‘하고 애절하게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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