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는 자, 먹으면 큰일 나나요?-3

나를 리스펙 한다고? 왜?

by 암시랑


자, 이제 K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K가 터덕터덕 사라진 지 1년쯤 지나, 우연히 지역 행사에서 K를 잘 안다는 S를 만났다. S는 K가 내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반가워했다. K는 몸이 불편한 내가 열심히 사는 걸 멋지다고 했다고 하는데 마치 무방비 상태에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K가 나를 존경했다고?


S는 K의 이야기를 줄줄 풀어놓았다. K는 19살에 고향을 떠나 해남에서 10급 공무원이 되었고, 시설 공무직으로 일하다 큰 사고를 당했다. 추석을 앞두고 무연고 묘지의 제초 작업을 하던 중, 돌덩이에 튕겨나간 제초기의 날이 복숭아뼈 아래에 박혔다. 수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발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했고, 의사는 정상적인 걸음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는데 K는 포기하지 않고 재활과 운동에 몰두해 결국 다시 자연스럽게 걷게 되었다고.


하지만 사고의 후유증은 커서 한 시간만 서 있어도 발이 코끼리처럼 부어오르고 통증이 심해 당최 일을 할 수 없었다고. 그런 사정을 모르는 동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젊은 게 놀고먹는다"며 손가락질했지만, K는 그저 웃어넘겼다. S는 나도 비슷하지 않느냐는 안쓰러운 눈빛을 지었다.


20년도 더 지난 케케묵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K가 겪었던 사회의 편견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이제 내가 겪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사지 멀쩡한데 왜 일을 하지 않느냐"며 K를 질책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K가 삶의 의지가 없던 게 아니라, 사회가 그 의지를 펼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것을.


장애인에게 노동은 더욱 가혹하다. 일자리를 찾기도 어렵지만, 설령 면접 기회를 얻더라도 "뭘 할 줄 아느냐" "생각보다 할 줄 아는 게 많네" 같은 무례한 말을 듣기 일쑤여서 마음 여기저기 난 생채기는 말도 못 한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산다. 실패, 실연, 사고, 질병 등으로 인해 삶이 얼마간 혹은 송두리째 바뀌기도 하지만 우리는 타인의 사연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하려는 노력은 하고 있을까? '우리'와 '그들'로 편을 가르거나 위로와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무례함을 저지르지는 않았을까? 내가 K에게 그랬던 것처럼.


오래전 K와 연락이 끊겼지만, 그때의 무례함을 이제라도 사과하고 싶다. 나이 많은 중증장애인의 재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세상이라는 걸 확인받는 요즘,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말은 회사 밖의 세상은 상상보다 더 혹독하고 냉정한 현실이 더 처절하다. 노동하지 못하면 먹을 수도 없다는 게 인간적이진 않지 않은가?


그래서 노동이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는 사회는, 노동하지 못해도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권리가 외면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보장제도는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고, 이를 ‘거저 얻어먹는’ 것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시선은 위험하다. 누구나 생애 어느 순간에는 사회보장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므로.


우리 헌법(제34조 1항, 사회보장법)과 세계인권선언(제22조, 사회보장의 권리)에서도 사회보장은 공동체의 시스템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라고 명시하고 있어서 꼭 노동을 해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K를 비롯한 누구라도 원할 때 일할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세상이었으면 한다. 그게 더 인간적인 사회가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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