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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화신 만자씨도 흔들릴 때가 있다

4기 암환자의 슬기로운 치병 생활

by 암슬생 Mar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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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3월 10일) 인퓨저를 제거하고 회사를 다녀왔는데 귀가하자마자 그냥 옷을 입은 채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항암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날인데 이번엔 그 정도가 심한 것 같았다. 졸리고, 속이 울렁거리고, 온몸에 힘이 쫘악 빠지고..


조금 자고 나서 저녁을 먹으려 했는데 깼다가 까무러치듯 잠들기를 아침까지 반복했다.


이번엔 감기가 동반돼서 증세가 심해진 것 같기도 하고, 춘천 여행이 조금 무리였던 것 같기도 하다.


가족들은 걱정 어린 눈 빛으로 따뜻한 차를 준비해 주고, 마사지를 해주고, 뭐 먹고 싶은 게 없는지 묻기도 한다.


근데,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침대에 눕고만 싶었다. 가능한 아픈 내색 안 하는 걸 잘 아는 수호천사의 애잔한 표정이 보였다.


'오죽하면 저렇게 말도 안 하고 잠만 잘까.'

아마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가능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힘겨운 밤을 보냈다. 큰 불상사는 없었으나 아침까지 몸이 너무 무거웠다.

온열치료하러 가는 날인데 단독비행이 쉽지 않아 보였다.


"택시를 타든지 대리를 하든지 하자"


"음 글쎄.. 운전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관성이란 게  참 무섭다. 작은 변화도 거부한다. 택시를 타면 될 것을, 대리를 하면 될 것을 괜히 고집을 피우고 운전대를 잡았다. 집중력도 없고 졸린 것 같아 금방 후회를 했다. 천천히 조심스레 출발을 했다.


늘 하던 대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외치는데 순간 울컥한다.

몸이 많이 힘들면 긍정의 화신 만자씨도 흔들린다.


'언제까지 이렇게 아파야 할까?'


봄볕이 너무 좋아서인지 속상함이 더했다.

만자씨도 인간이다. 작은 피조물. 아무리 긍정의 화신이라도 흔들릴 때가 있는 법이다.


인퓨저를 제거하고 부작용이 심할 때 우울감 비슷함을 느끼곤 한다. 비슷한 게 아니고 우울증일 수 있다. 암 환자들이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는 이유다.


오전에 온열치료 받으며  잤더니 컨디션이 조금 올라왔다. 어젯밤 수호천사가 정성스레 준비해 준 '새우볶음 짜장밥''을 먹고 다시 힘껏 날개를 펼쳐볼까.


■ 수호천사가  준비해 준 도시락■ 수호천사가  준비해 준 도시락


식욕이 없었지만 수호천사가 싸준 도시락을 펼쳤다. 샐러드, 동치미, 백김치에 오늘의 주인공 '수제 짜장''새우볶음밥'.


배선실에서 짜장과 새우볶음밥을 데워서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숟가락 먹었는데.. 웬걸.. 이게 맛있다. 아주 맛있다.

꼭꼭 씹어 천천히 한 그릇을 싹 비웠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맛있는 점심.. 이럴 때 또 감정이 올라온다. 수호천사의 슬픈 듯이 옅게 미소 짓는 얼굴이 떠오른다.

사진을 찍어 보고 드려야지..


맛있는 점심을 먹었으니 병원 옥상정원을 산책해 봐야겠다. 봄을 확인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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