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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Sep 17. 2024

함께 라디오를 듣던 겨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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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 년 전 겨울밤, 다연 누나는 나와 내 여동생의 방에 함께 누워 아날로그 라디오 주파수 튜닝 다이얼을 돌리고 있었다. 라디오 뒤쪽에 매달린 FM안테나를 길게 뽑아서 유리창 방향으로도 돌려 보았지만, 반지하라 그런지 음악 채널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볼륨을 작게 줄인 채 우리는 지지직거리는 전파 소리만을 이삼 분째 듣고 있었다.

 “역시 지하철에서 산 라디오라서 이런가?”

 내가 말했다.

 “아니야. 장사하는 아저씨가 열차 안에서 옛날 노래 나오는 것도 들려줬다니까. 너네 집이 전파가 잘 안 잡히는 거 같애.”

 다연 누나가 특별히 우리 집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나는 살짝 발끈하며 말했다.

 “아냐. 누나가 사기당한 거야.”

 그때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라디오를 난생처음으로 보는 여섯 살 동생 하율이가 말했다.

 “난 잘만 들리는데?”

 “저 지지직 소리? 하율아, 저건 라디오 소리가 아니라 다른 소리야.”

 “난 들려. 비 내리는 것도 들리고, 나무 타는 것도 들리고, 눈 내리는 것도 들려.”

 하율이의 엉뚱한 말에 내가 꿀밤을 때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어린 게 거짓말만 늘었네. 야, 저게 어떻게 비 오고 눈 오는 소리냐.”

 하율이의 말에 다연 누나는 살짝 미소를 머금은 듯한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투닥거리는 우리 남매의 대화를 듣다가 말했다.

 “하율이 말이 맞는 거 같애. 라디오가 뭐 꼭 노랫소리만 나오란 법 있니?”

 “누나까지 왜 그래. 그럼 외계인이 보낸 메시지라도 들린다는 거야?”

 그때 라디오의 지직거림 속에서 미세하게 사람 말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가만있어봐.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살짝 다이얼을 돌려볼까?”

 “외계인이야?”

 하율이가 다연 누나의 말에 그렇게 되물었다. 다연 누나가 아주 살짝 다이얼을 왼쪽으로 돌리자, 미세한 음악소리가 조금 더 선명히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채널은 약간 잡히나 보다. 여기에 고정시켜 놔야겠네. 깨끗하게는 안 들려도.”

 “근데 무슨 노래지?”

 나, 하율, 다연 누나 그렇게 우리 셋은 겨울밤 한 이불속에 나란히 누워 라디오의 노이즈를 뚫고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건 어쩌면 하율이의 말처럼 먼 외계, 캄캄한 우주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 그리운 이의 아련한 메시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우리 모두 외로웠으므로. 하율이는 하율이대로, 나는 나대로. 그리고 다연 누나는 다연 누나대로.          

  

 흠뻑 젖은 두 마음을 우린 어떻게 잊을까

 아― 다시 올 거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가사 들린다. 이거 아이유 목소리 아닌가?”

 다연 누나가 말했다.

 “비슷하긴 한데, 아이유 노래 중에 이런 노래도 있었나?”

 나는 그때까지 아이유라는 가수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그렇게 말했다.

 “리메이크 곡 같은데. 들어본 거 같아. 근데 제목은 잘 모르겠네.”

 “아이유 언니야. 목소리 맞아.”

 하율이가 확신하듯 말했다. 가수가 성량을 키우는 후렴 부분에 이르자 가사가 좀 더 선명히 들려왔다.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멜로디와 가사가 왜인지 모르게 가슴속에 깊이 스미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겨울밤이었기 때문일까. 다연 누나와 처음으로 함께 듣는 노래여서일까. 어쩌면 우리는 그때 모두 외롭고 추운 짐승들처럼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있어서. 그래서 그 슬프고 아름다운 노랫말들이 더 아련히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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