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백수가 될 순 없을까?
원래 늘 바빠야만 에너지가 도는 나는 백수인데도 여전히 늘 바쁘다.
해외여행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은 흔히들 이야기한다.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빡빡하게 여행해?
꼭 특별한 무언가를 봐야만 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것도 여행이지 않아?
과거의 나 또한 그랬다.
예전의 나는 해외를 가면 늘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스케줄을 꽉꽉 채워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곳에서 꼭 특별한 무언가를 봐야만 그 여행에서 남는 것이 있다고만 느껴졌다.
하지만 지난 일 년 여간 여행을 하며 그들 속에서 함께 생활하며 나 또한 많이 변해갔다. 낯선 그곳에서 굳이 특별한 것을 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여유에 물들어 그저 쉼만 있는 느슨한 하루를 보내는 그 자체가 나에겐 여행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오자 난 또 예전의 나로 돌아가 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 시간이라서 더 그런 것일까.
하루라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이 기분이 날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백수이지만 여러 일정들로 꽉꽉 채워진 나의 달력을 보았을 때에만 뭔가 모를 뿌듯함과 뭔가 모를 열심히 살았다는 만족감이 든다.
이러한 나의 일상들이 모이고 모인다면 내가 그리는 더 좋은 미래가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바람만 커져간다.
매월 그 달의 계획을 잡았지만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주변 여건들로 인해 또다시 당장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질 때면 나에겐 늘 또다시 무기력증이 찾아온다.
난 역시나 뭔가를 해야 에너지가 생기는 사람인 걸까?
그렇게 또 난 무언가를 하기 위하여
또다시 내 스케줄표를 꽉꽉 채우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져 온다.
하지만 정말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조금은 더 여유를 가지고, 조금은 더 쉬어가도 괜찮았을 텐데.
열심히 달려 나가다가도 며칠 정도는 나에게 온전한 쉼을 주어도 충분히 괜찮을 텐데.
며칠 정도 그런다고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닐 텐데.
하지만 난 또 이 공간 속에서는 그걸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이렇게 바쁜 백수로 살 수밖에 없는 건
날 하루라도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계속 채찍질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언젠간 나도 조금은 덜 바쁜, 여유로운 백수의 삶을 즐기는 단단한 마음을 지닌 백수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