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봄 Sep 27. 2024

사랑의 역학, 몸살의 이유

파혼이 가져다준 의외의 선물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처럼
슬프고 외로울 때가 있을까?


결혼을 두 달 앞두고 파혼을 당한 순간, 믿을 수 없는 그 일이 모두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사랑에 버려진 나. 외롭고 슬펐다. 사랑도 꿈도 현재의 삶까지도 통째로 잃어버린 듯한 절망감. 남은 건 오직 괴로움뿐이었고 어떤 것으로도 그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

그 길을 걸으면 답이 보일 거라고 길에 대해 알려주신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그에 대한 마음을 정리해야 한다는 각오?

그를 중심으로 살았던 어리석음을 버리고

새로운 나로 거듭나야겠다는 결심?

신을 만나기 위해서?’

이 모든 변명은 다 핑계였고 그저 혼자 있고 싶었다. 다른 어떤 걸 기대할 마음 상태가 아니었다.



준비도 없이, 막연한 보상심리만 잔뜩 끌어안고 떠났다. 무모한 여행길에 오른 난 배낭보다 무거운 슬픔을 어깨에 잔뜩 짊어졌음에도 씩씩하게 걸었다. 새벽 5시부터 매일 25km씩! 아침은 에스프레소 한잔, 점심은 빵과 물로 간단히 해결하고 저녁에도 빵과 과일, 맥주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열흘을 걸었다. 의외로 순탄하게 고된 여정을 견뎌낸 스스로를 칭찬하며 오랜만에 여유를 즐긴 다음 날, 뜻하지 않은 불청객이 찾아왔다! 열이 나고 몸이 무거운 데다가 으슬으슬 춥기까지 한 게 몸살이 난 게 분명했다. 하지만 무릎에 물이 차 일어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겨우 몸살일 뿐인데 걷는 걸 멈추긴 싫었다. 어김없이 새벽 5시부터 걷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우연히 같이 걷게 된 영국 유학생 단이 좀 쉬어가라고 날 억지로 의자에 끌어 앉혔다. 망치로 두들겨 맞은 못처럼 몸 전체가 바닥에 쑥 박혀 버리기 직전이라 못 이기는 척 배낭과 몸을 내려놓았다. 나 때문에 누군가 힘들어지는 게 싫어서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어깨에 걸쳐주고 따뜻한 커피까지 손에 쥐어주더니 짐까지 나눠달라고 자신의 배낭 주둥이를 벌린 채 버티고 서 있는 단. 자기 짐도 버거운 그 길에서는 먹을 것조차도 들어주기 힘든 법인데, ‘버티기 왕’ 단은 기어코 내 침낭과 책과 옷가지들을 챙겼다. 그때 같은 숙소에 묵었던 모자(母子)-어머니와 동호-가 불쑥 나타났다. 어머니가 입고 있던 오리털 잠바를 벗어주시며 같이 걷겠다고 하시자 단과 동호는 내 짐 일부를 들고 먼저 떠났다.

여기까지 와서 남한테 신세 지고 싶진 않았는데 고집을 피울 때가 아니었다. 이미 몸뚱이는 걸어 다니는 불덩이였다. 짐을 덜긴 했지만 여전히 몸은 무거웠고 달팽이 걸음일 수밖에 없는 난 같이 걷고 있는 어머니께 미안했다. 먼저 가시라고 해도 펄쩍 뛰며 끝까지 같이 갈 거라고 하셨다. 두 배는 덩치가 큰 나를 부축하며 곁을 지켜주는 마음이 고마워 계속 걸었다.



그날따라 길 끝도, 그 많던 바(bar)도 보이지 않았다. 길의 시작과 끝이 이어져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 같았다. 걷다 쉬는 것도 한계에 다다르자 어머니가 한숨 자고 갈 것을 권유했고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땅한 그늘도 없는 길바닥에 드러누웠다. 얼굴만 모자로 살짝 가린 채.

얼마나 잤을까? 수군대며 낄낄 웃는 소리가 들려 잠이 깼다.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얼굴 위의 모자는 그대로 둔 채 귀만 쫑긋 세웠다. "찰칵!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워있는 나와 어머니를 찍는 소리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지 못했겠지...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땡볕에 널브러져 자는 재미있는 순례자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 광경을 즐기는 것 같았다. 한동안 그렇게 누워있자니 내가 그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까지 했다. 잠깐이었지만 아픈 몸뚱이가 고마웠다.


그 웃음과 잠 때문에 몸이 한결 가벼워지긴 했지만 끝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일은 말로 표현 못할 고통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잠시 후 저 멀리 희미하게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아득한 꿈 속처럼.

“누나!”

환영을 보고 환청까지 들리다니… 이제 신에게로 가야 할 시간이 된 것일까?

“누나, 누나! 괜찮아요?”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니 먼저 갔던 단과 동호가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가까이 온 두 사람은 내 배낭을 내려줬다.

“업어줄까요?”

“아니...”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내 배낭과 카메라를 멘 그들이 보였다. 꿈도 환영도 환청도 아니었다.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산티아고 가는 길에선 아무도 갔던 길을 되돌아오지 않는데... 내가 뭐라고...’



내가 걸어온 길보다 더 먼 길을 되돌아와 죽어있던 내 몸을 살려준 그들은 그것도 모자라 몸속의 불덩이와 싸우며 6시간 내내 누워있는 내 곁을 지키며 내 마음까지 살려줬다. 10분에 한 번씩 당번을 정해 몸의 열이 떨어졌는지 체크하고 물수건을 갈아주면서 그렇게...

6시간이 지난 후 기적적으로 일어났다. 누워있을 땐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았는데 몸을 일으키니 허기가 졌다.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어머니가 토마토 수프와 삶은 달걀 2개를 가져오셨다. 옆에 앉아 달걀껍데기를 까서 입에 넣어주는데 아무 간도 하지 않은 삶은 달걀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목이 메었지만 두 번째 달걀을 한 입에 삼켰다. 어디서도 다시 못 볼 맛이었다.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죠. 죄송해요."

"무슨 소리야? 이렇게 살아줘서 고맙지!"

외로움이 나를 슬프게 했지만
그 슬픔과 외로움 때문에 사랑받았다.


더 이상 외롭고 아프지 않았다. 아낌없이 사랑을 준 그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브런치북 <맛에도 심리가 있다면>​에 실었던 글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의 시작점이기에 다시 싣는다.



이전 01화 산티아고에 연애하러 갔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