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직서는 이미 시로 썼어요
서울 잠실에 있는 어느 놀이공원에는 좌석이 돌아가는 롤러코스터가 있다. 이 롤러코스터는 지하에 레일이 깔려서 어둠을 달린다. 롤러코스터 이름에 우주를 도는 ‘혜성’이 달렸다.
어릴 때 그 놀이동산이 좋아서, 그 놀이동산에 이 롤러코스터가 좋아서, 그곳에만 가면 그 롤러코스터를 타고 또 줄 서서 탔던 기억이 난다. 바깥에 있는 다른 놀이기구보다 이 롤러코스터가 좋았던 이유는 별거 없었다. 미래에 우주여행을 하게 된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아서, 사방이 어두운데 번쩍이는 조명들이 좋아서, 돌아가는 의자에서 뒷좌석 앉은 엄마나 동생이나 친구를 볼 때면 그렇게 웃기고 재밌을 수 없어서. 오죽하면 롤러코스터 대기 라인 주변을 장식하는 인테리어나 무드 때문에 살짝 퀴퀴하던 지하 냄새를 우주냄새로 착각했다.
성인이 되어서 놀이동산이란 곳은 드물게 가는 곳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 놀이동산을 가면 꼭 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어릴 때 느낀 스릴은 이젠 없고 그저 타기 직전에 먹은 추로스가 속에 얹히는 느낌뿐이다. 그리고 어릴 때 즐거워하던 모습만 떠오르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을 뿐이다.
위 글을 쓸 때, 떠오르는 회사 일이 있었다. 정말 별 건 아닌 일.
#1.
무더운 여름이 끝날 무렵부터 내가 센터장으로 일했던 지역청년센터는 본격적으로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주 5일은 기본이고 주말에도 수시로 행사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느라 나 포함 다섯 밖에 없는 사무실 식구가 불규칙적으로 센터 일을 해치우고 있었다.
겨우 꿉꿉하던 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불 때 남들은 단풍놀이다, 피크닉이다, 이리저리 놀러 가는 SNS의 모습에 30대 중반이던 나도 그렇게 부러운데, 같이 일한 20대 직원들은 오죽했을까. 소수 인원뿐이라 편한 관계로 지내던 사무실에서, 이 갑갑한 사무실을 참다못한 한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센터장님, 저희도 워크숍 차원으로 다른 지역 견학도 가면 좋겠어요."
"네, 가셔도 좋아요. 출장 보고하시고, 보고서 제출하면 되니까 일정이랑 갈 곳만 미리 알려줘요."
"아니요, 저희 전체요. 센터 전체 청소하는 날에 그때 다 같이 가까운 곳에 가요."
참, 나도 매니저였던 당시엔 공공근로 매니저나 인포메이션 아르바이트에게 자리 잠시 맡기고 센터 직원 전체가 OO시의 청년 센터들과 교류도 하고 구경하러 가기도 했는데. 매니저였다가 센터장이 되어서 나도 그런 행사에 다 같이 가보고 싶었는데 이게 막상 마음대로 시간도 여유도 나지가 않았다.
"어디 생각해 놓은 데가 있어요?"
"이번에 OO구 센터에서 지역 아티스트 데리고 음악축제를 한다는데, 저희 청소로 휴관하는 날에 거기 다 같이 가보고 싶어요. 행사를 어떻게 하는지도 좀 보고 벤치마킹하면 좋을 거 같아요. 그리고... 가서 축제도 조금 즐기고 싶어요."
그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직원은 떡(벤치마킹)보단 사실 콩고물(음악축제)이 더 끌리기도 했을지도 모르고. 그런데 업무를 위한 좋은 이유도, 갈 타이밍도 우연찮게 맞으니 기왕 다 같이 가면 덜 눈치 보이고 좋지 않겠냐는 마음. 내 속에서도 '뭐, 괜찮을 거 같은데? 부장님에게 보고하고 가도 별 말 없을 거 같고. 시기도 괜찮고.' 내가 고민하는 사이 이 직원은 다른 매니저들에게도 음악축제 홍보를 하고 있었고, 다들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때 다른 직원이 농담조로 또 이런 말을 꺼냈다.
"센터장님, 전에 OO음악 페스티벌 가고 싶었는데 티켓팅 실패하셨다면서요. 꿩 대신 닭(사실 닭도 아니고 병아리 정도 느낌이다.)이라고 올해는 여기 가요."
"아, 그래요. 센터장님. 거기 못 간 한을 여기에 풀고, 출장 가서 벤치마킹도 하고. 좋지 않을까요?"
"아이 참, 알겠어요, 알겠어. 부장님께 보고 올려볼 테니까 기다려봐요. 그리고, 그 페스티벌이 언제 적 이야기인데, 그걸 이렇게 엮어요. (웃고 있었다.)"
곧장 부장님과 사내 메신저로 일정과 장소 보고를 했고, 다행히 괜찮다는 답변을 빠르게 받았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출장으로 견학을 가려던 날에 수탁사 대표가 우리 센터에서 미팅을 하고 싶다고 회의실을 빌리겠다고 했다. 즉 회사 대표가 내가 관리하는 곳에 방문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이 통보에 홀로 대표의 방문과, 직원들과 가려했던 출장 사이에서 대표의 방문을 맞이하고 출장은 혼자 빠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