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정겨운 똥냄새
대지에 봄기운을 전해주는 봄비소식이 있는 날이면 퇴비와 비료를 사러 온 농사꾼들로 농협 마당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비가 오기 전에 퇴비나 비료를 흩쳐놔야지 이것들이 빗물에 녹아 땅 속에 잘 스며들기 때문이다. 도톰히 쌓여 올라간 퇴비와 비료는 식물들의 귀한 양식이다. 경제사업장 직원들은 엉덩이를 붙일 새도 없이 한 명은 전표를 끊고, 한 명은 비료포대를 나르고, 한 명은 지게차를 운전하며 바삐 움직인다. 바쁜 만큼 돈도 되면 좋겠지만 사실 농협의 경제사업장은 늘 마이너스이다. 농약, 비료, 일반자재 품목은 팔아봐야 남는 것 없지만 농민들을 위한 환원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농협의 가치니깐.
아침부터 온 동네가 퇴비냄새로 가득하다. 이 지역은 시내라도 드문드문 논과 밭을 끼고 있어서 아침부터 진동하는 냄새에 아이들은 '윽, 지독한 똥냄새!' 하며 코를 막는다. 이런 날 비가 시원하게 내려주면 똥냄새에도 정겹게 느껴지겠지만, 구름만 잔뜩 낀 채 얄밉게 내리는 둥 마는 둥 하는 비가 내리면 농사꾼들의 속은 답답하기 만다. 마침내 방귀만 북북 뀌던 하늘에서 비가 비답게 내린다. 그제야 농사꾼들은 바쁜 마음에 쉼표를 하나 찍는 여유가 생긴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이번엔 신용사업장이 바쁘다. 밭과 논으로 흩어졌던 농민들이 비 오는 틈을 타고 미뤄두었던 볼 일을 보러 오기 때문이다. 돈도 찾고, 하나로마트에서 장도 보고, 수다도 떨며 잠깐의 여유를 즐긴다. 앞으로는 바쁘면 더 바빠졌지 이보다 여유 있는 날이 잘 없다는 걸 알기에 미뤄뒀던 일도 하고 해야 할 일을 앞당겨하기도 한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든 비 오는 날에는 경제사업장도 북적인다. 비 오기 전날처럼 바삐 바삐 나가는 손님은 없고, 저마다 자판기 커피 한 잔씩 뽑아 들고 수다삼매경에 빠진다. 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시끄러운 이야기 소리에 직원들은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이런 날에는 직원들도 농민들과 함께 수다를 떤다. 수다 속에서 이런저런 소식도 듣는다. 누구네 집에 사고를 당했는지, 어디 쪽에는 벌써 꽃이 피기 시작했는지, 때아닌 3월의 눈에 냉해피해 입은 농가가 있는지.
농사꾼은 하루는 하늘이 정해준다. 어떤 날은 쉬라 하니 쉬고, 어떤 날은 움직이라니 움직여야 한다. 그 옛날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바람을 불게 하는 풍백, 비를 내리게 하는 우사, 구름을 다스리는 운사를 함께 데려온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농사일에는 기한도 제철도 다 날씨에 달려있다. 피부에 닿는 공기로 계절의 냄새로 손끝에 닿는 흙과 잎의 촉감으로 알맞은 시기를 느끼며 다음 차례로 걸음을 옮겨야 한다. 농민과 운명공동체인 농협도 그들의 걸음에 맞춰 함께 하루가 정해진다. 그래서 항상 기상예보에 귀를 기울이고 하늘에 눈을 둔다. 그리고 항상 마음속으로 풍년과 안녕을 기원한다. 올해도 다들 웃으며 가을을 맞이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