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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진실

2부. 꿈꾸는 사자의 도전

by 앤드장

민호는 구 대표를 조용히 부른다.

“대표님, 시간이 넉넉하다 생각했는데 며칠 남질 않았네요. 메인 디자인 어쩌면 좋겠어요?”

먼저 구 대표의 의견을 묻는다.

“제가 볼 때는 괜찮던데요.”

구 대표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디자인이라는 게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정답이 없는 거라 생각하기에 그리고 아직 최종 결정자에게 보이지도 않은 상황이라 자신이 느끼는 것과는 다르게 문제없다는 듯 이야기한다.

그 말에 민호는 콘셉트설정이 잘 못됐음에도 그렇게 말하는 구대표가 좀 의아스럽다.

“음, 그래요? 제가 볼 때는 대아그룹의 표현이 잘 안됐어요.”

“시안을 요청해도 디자이너가 표현을 못 합니다. 저 시안 가지고 보고했다가는 대표님도 힘들어질 수 있어요.”

“고민 끝에 말씀드리는 건데, 제가 시안 하나 잡아 드려 볼 테니, 보고를 같이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제가 작업하는 건 물론 비밀로 하고요. 다른 사람이 알면 저희 둘 다 좋진 않을 겁니다. 이곳엔 못된 쥐새끼가 많아서요.”

“저희야 감사합니다만, 과장님이 많이 힘드실 거 같은데요.”

“이렇게라도 해야 무사히 통과될 거 같습니다.”

‘어디 얼마나 잘하나 디자인이 나오면 보자고!’ 구 대표는 속으로 자존심이 상하고 오기가 생기지만 꾹 참는다.




보고 당일, 이강 본부장과 관련 직원들이 회의실에 모여 있다.

회의를 막 시작하려는데 박철중 사장이 회의실로 들어온다.

“이강 본부장님, 오늘 발표가 있다기에 기대되고 궁금해서 들렀습니다. 하하하”

그러나, 박철중 사장의 속마음은 그 반대다.

“네, 이쪽에 앉으시죠.”

이강 본부장이 그를 맞이한다.


구 대표는 준비한 디자인을 프로젝터에 띄우고 인쇄물까지 테이블에 준비했다.

민호는 며칠 디자인 작업을 병행한 탓에 초췌한 모습으로 구 대표 맞은편에 앉아 있다.

일에 있어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민호는 자신도 맘에 들지 않는 것을 이강 본부장에게 보여줄 순 없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운 디자인이 나올 때까지 밤을 새우며 작업을 했다.

구 대표는 새벽에 민호가 건네준 시안을 보고 속으로 많이 놀랐다.

‘레벨이 다르다고나 할까?’ 회사 디자이너가 작업한 시안과는 비교가 안 됐다.

두 개의 디자인을 함께 놓고 보니 장민호 과장이 무엇을 말했던 건지 확실하게 이해가 갔다. 자신이 캐치를 못하면서 오기를 부렸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준비하느라, 고생했습니다.”

이강 본부장이 기본적인 감사의 인사를 먼저 건넨다.

“어디 들어볼까요?”

구 대표는 준비한 보고서를 토대로 콘셉트부터 차근차근 설명한다.

“이 디자인의 콘셉트는 대아그룹의 상징을 모토로 하여 도출되었습니다. 앞으로 크게 될 아이를 위하는 대아의 이념을 상징하는 아이 사랑을 모티브로 큰 하늘을 배경 삼아 하트와 아이를 형상화한 이미지로 표현했습니다. 또한, 밝은 파랑 계열의 톤을 사용하여 미래 지향적인 느낌을 주고자 했습니다.”

베테랑 기획자답게 언변은 청산유수다.

“오~, 괜찮네요! 이미지 자체도 시원하고 답답함이 없어요. 그룹 이미지와 잘 맞는 거 같습니다.”

“다른 건 없나요?”

“네.”

사실은 하나 더 준비했지만, 굳이 못한 시안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구 대표.

칠구디자인의 기획자나 디자이너 모두 대아그룹을 전혀 이해 못하고 작업을 한 셈이다.

구 대표는 무엇보다 회사 디자이너의 역량이 너무 모자람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장민호 과장에게 크게 빚을 진 셈이다.

구 대표는 한 마디 더 한다.

“이 시안에 확신이 있었기에 굳이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안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나만 준비했습니다.”

이강 본부장은 구 대표의 마인드가 마음에 든다.

그러나 민호는 밤을 새우며 힘들게 자신이 작업한 디자인을 두고 적당히 하면 좋은데, 계속해서 구 대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거짓된 말들이 거슬린다.


구 대표는 언변의 달인이다.

이강 본부장은 아직 구 대표를 알지 못한다.

단지, 시안 발표하는 모습에서 그의 강단과 첫인상에 호감이 갔고, 선택과 집중에 대해 잘 아는, 중요한 것을 잘 판단하는 전도양양한 스타트업의 스마트한 대표로 본부장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좋아요. 구 대표. 잘 만들어 봅시다. 수고했어요.”

재주는 곰이 부리고 생색은 여우가 내고 있다.


박철중 사장은 진행이 잘 안되고 있다고 전해 들은 이야기와는 다르게 시안이 마음에 든다.

‘뭐야? 오랜만에 본부장의 구겨지는 얼굴을 보러 왔건만, 비서팀장 내 가만 안 둔다’ 속으로 생각하며 쓰린 속을 달랜다.

“괜찮네요. 역시 이강 본부장님은 복이 많으신 거 같아요. 이렇게 밑에서 잘해 주니 말입니다. 부럽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하.”

사장과 본부장의 한 마디에 분위기가 금세 구 대표에게 호의적으로 바뀐다.

전략팀의 여러 직원들이 수고했다며 칭찬 일색이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도울 게 있으면 말씀 주시고요, 구 대표님.”

“콘셉트를 그룹 이미지와 딱 맞게 잘 잡으셨어요. 매일 야근하신 보람이 있으시겠어요? 하하하”

이 프로젝트 건에 있어서 구 대표에게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민호는 전략팀의 사람들이 저렇게 친절했나 싶다.

결과는 좋아서 다행이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니. 그리고 구 대표…, 저렇게 연기를 잘했나?’

회의가 끝나고 구 대표가 고맙다는 말을 살짝 건네고는 정리가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신수미 과장과 회의실을 떠난다.

민호는 시안 작업으로 며칠간 밤, 낮을 의자와 한 몸처럼 지냈더니 허리까지 아파오며 지칠 대로 지친 몸에 허탈함까지 더해져 쓰러질 것 같다.




아무도 생각지 못할 일이다.

담당자가 외부업체 일을 아무도 모르게 작업을 하다니….

어떤 바보가 그럴까?

민호는 한 치 앞만 보고 순간을 모면코자 판단한 것이 아닌, 자신을 믿고 맡겨준 본부장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민호의 눈에 디자인이 보였으므로 담당자로서 그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서 진행한 것이다.

그런데, 일의 흐름은 구 대표에게 힘이 실리고 민호는 오히려 약해지는 모양새다.


모두가 잘했다고 축하하는 이 상황을, 불편한 진실을 혼자 알고 있는 민호만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민호는 그 사실로 답답하고 피해의식마저 느껴진다.

‘비밀로 하기로 해 놓고 왜 이리 마음이 불편하고 속 좁은 사람처럼 피해 본다는 생각이 드는지, 왜 이성과 감정이 다른지….’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대범하지 못하다고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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