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꿈꾸는 사자의 도전
민호는 계속해서 사람과의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만성적으로 허리가 계속 아팠다.
그런데, 며칠 야근까지 하면서 무리했는지 밤새 자고 새벽에 일어나려는데 다리가 움직이질 않는다.
하반신 마비처럼 허리 아래로 감각이 없다.
‘허리가 끊어졌나?’ 순간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다리를 약간만 움직여도 허리 통증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새벽 시간, 119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가 MRI를 찍으니 디스크가 터졌단다.
간밤에 허리 쪽에서 뭔가 흐르는 느낌이, 계속되는 피로에 온전치 않은 몸으로 며칠간의 밤샘 작업이 트리거가 되어 디스크가 터져 흐른 것이다.
허리 통증으로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있기도 힘든 상황이지만,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기에 시술하고 몇 주 후 퇴원하여 또다시 직업 전선에 나서는 민호.
출근해서 보니 진행하던 홈페이지 작업은 구 대표가 못 보던 디자이너와 문제없이 진행하고 있다.
도움을 줬으니 앞으로 더욱 협력해서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자신을 외면한다.
지난 보고 때 디자인 사실이 들춰질까 겁내는 것인지?
민호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잘 마무리되어 다행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알고 보니 민호가 입원하는 바람에 담당자가 김기만 과장으로 바뀌었단다.
몸도 불편한 민호는 이래저래 야속하고 허탈한 기분이다.
구 대표는 시의적절하게 장민호 과장이 입원하여 디자인의 난감한 상황을 쉽게 모면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민호 과장이 눈에 보이지만 이젠 담당자도 아닌 그를 일부러 피한다.
구 대표는 신수미 과장에게 실장 자리를 맡기고 직원을 채용하며 회사가 커지는 걸 실감하고 있다. 요즘처럼 즐거운 적이 없었던 거 같다.
하늘이 돕는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일이 잘 풀릴 수가 없다.
결국, 칠구디자인은 이번 프로젝트뿐만이 아닌, 대아그룹의 전속 디자인 업체로 선정됐다.
민호는 아픈 허리로 일을 하느라,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삼십 분 업무 후 오분 간 누워 있기, 의자에 앉을 때는 최대한 몸을 눕혀 앉기, 허리를 절대 숙이지 않기 등 규칙을 정해놓고 주위 사람이 아픈 걸 눈치채지 못하게 눈치 보며 일을 한다.
그러나, 혼자만 들락날락하는데 왜 눈에 띄지 않겠는가? 여기 전략팀 사람들은 의자에 앉으면 엉덩이에 껌이라도 붙어 있는지 3시간은 기본이다. 겨우 오줌보가 꽉 차야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난다.
주위를 기울이지 않아도 모두 안다.
‘장민호 과장이 허리가 불편해서 일 처리가 늦는데!’
그렇게 힘겹게 일하며 한 달 즈음 지나니, 장민호 과장이 일 못한다는 소문이 돌며 전략팀에서는 더더욱 바라보는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고 몸도 아픈데 가시방석이다.
힘겹게 다니는데, 아무도 관심도 없으며 그저 병신 취급이다.
민호는 도움을 주고도 오히려 피해만 보게 되던 일이 생각나며 대기업이란 이곳, 오로지 업무만 중요하고 경쟁만 있는, 배려나 양해 따위는 없는 이런 시스템에 진저리가 난다.
민호는 이런 문화에 환멸을 느낀다.
따뜻한 기운의 바람이 불어와 살며시 살갗을 스친다.
봄바람이 불어온다.
매년 3월이면 회사에서 정기 건강검진을 실시한다.
민호는 건강검진 결과 갑상선 기능항진증이란 병명을 얻었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언제부턴가 출근만 하면 불안하고 이곳은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란 생각에 맘이 편치가 않았다.
이곳에 있는 한 스트레스는 계속 받을 것이고 허리통증과 건강은 더 악화만 되리란 생각이 든다.
‘내가 선택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주체적으로 산 게 아니었다.
타인에게 조종당했으면서 그것도 모르고 지내온 듯, 지나고 나니 이용당하고 이용하고 그렇게 삶은 전개됐다.’
민호는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스스로 너무 한심스럽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열정적으로 살 수는 없을까? 내 삶인데….’
더 이상 바보같이,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날을 고민한 민호는 우선, 퇴사해서 건강부터 회복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사표를 제출하고, 퇴사전에 이강 본부장을 찾은 민호.
조심스럽게 노크한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이강 본부장을 처음 만났던 그때가 떠오른다.
그 잊을 수 없는 강렬한 목소리와 첫인상, 지금은 익숙해져선지 친근하고 부드럽게 들린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민호를 따스하게 맞이하는 이강 본부장.
그의 눈빛에 따듯함과 안타까움과 아쉬움과 걱정 어림이 묻어 있다.
그를 보니, 민호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이강 본부장이 말한다.
“이곳도 라인이라는 게 있고 정치가 있다네. 라인에 서기 위해, 힘을 키우기 위해 가끔은 생각과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하지. 자넨 힘들었겠지만 말이야. 이곳에서는 그게 일이라네. 그렇게 생각지 않으면 다닐 수가 없어. 직장과 자신의 삶을 분리하는 게 아닌, 직장이라는 곳이 곧 삶의 터전인 거야.”
아직 김이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을 잇는다.
“지금은 좋은 사람을 놓쳐 아쉽네만, 나는 믿네! 자네가 어디에 있건, 자신을 아끼고 꾸준히 성장시켜 나가리란 것을. 그리고 그때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자네는 나를 닮았거든, 하하하”
본부장의 말은 민호를 울컥하게 했다.
백아의 드넓은 가야금소리를 유일하게 알아주는 종자기처럼 자신을 알아준다는 마음에 언제나 그와 함께하고 싶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운명이 아니었다.
이강 본부장의 수하(手下)가 아닌, 지음(知音)이 되려면 지금의 민호는 더 경험하고 성장해야만 했다.
지금이 끝이 아닌 우리의 삶은 진행 중이므로, 언젠가 이강 본부장처럼 큰 사람이 되리라고 다짐하며 결국, 민호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 또 다른 삶터로 성장을 위해 그곳을 떠났다.
그렇게 대아그룹에서의 이강 본부장과의 만남은 민호의 인생에서 큰 의미를 남겼다.
김기만 과장은 경쟁자 한 명을 퇴장시켰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퇴사하다니, 멍청한 녀석. 모의하며 내쫓으려던 김완태 실장도 없고, 확실한 이강 본부장 라인에서 오히려 더 버틸 수 있을 텐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자신의 시선에서 딱 거기까지만 생각한다.
이젠 그에겐 장민호 과장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 것이다.
김기만은 동료를 밟고 버티며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서리라 생각하며 다시 지옥으로 뛰어든다.
※ MRI : 자기 공명 영상법(magnetic resonance imaging), 자력에 의하여 발생하는 자기장을 이용하여 생체의 임의의 단층상을 얻을 수 있는 의학 기계. 또는 그 기계로 만든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