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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문

by 청리성 김작가


누군가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 줄 수 있는, 나의 마음

‘난센스 퀴즈’는 일반적인 상식 이외에, 기발한 아이디어로 정답을 맞히는 게임이다.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게임이라, 다양한 곳에서 사용된다. 각종 모임이나 송년회에서도 많이 한다. 필자도 예전에, 가끔 모임에서 사회를 봤었다. 문제를 준비하기 위해 검색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어떤 문제는 ‘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도 안 되게 갖다 붙인 것도 있지만, ‘와!’라며 절로 감탄이 나온 문제도 있었다.


‘난센스 퀴즈’는 어릴 때도 친구들과 종종 하곤 했다.

구두로 문제를 내고 맞히기도 했지만, 도구를 이용하거나, 종이에도 적어서 문제를 내기도 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문제가 있다. 연필로 종이에 정사각형 모양을 그린다. 그걸 ‘울타리’라고 정한다. 그리고 각 변 중앙을 지우개로 지운다. 네 개의 틈을 만든다. 각 틈에 동물 이름을 적는다. 호랑이, 사자, 곰, 늑대 이렇게. 그리고 문제를 낸다. “자, 여기 울타리가 있는데, 가운데 토끼가 있어. 나갈 수 있는 틈이 네 군데 있는데, 무서운 동물들이 지키고 있어.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문제를 들은 친구들은, 고개를 숙이고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한참을 생각하다, 아무런 답을 내놓지 못한 친구도 있고,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울타리를 뛰어 넘어간다든지, 울타리 밑을 파서 그 밑으로 빠져나간다고 말이다. 무서운 동물들이 있는 곳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디로 가도 잡아먹힐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생각하다, 모든 친구가 모르겠다고 두 손을 들었다.


친구는, 못 맞힐 줄 알았다는 표정과 함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자, 잘 봐?”라고 말하고, 종이를 시계방향으로 돌렸다. 그랬더니 ‘곰’이라고 쓰여있던 글자가 ‘문’이라는 글자로 바뀌었다. “봤지? 여기 문으로 빠져나가면 돼.” 문제를 들었던 친구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일시 정지가 되었고, 문제를 냈던 친구는 뭐가 그리 통쾌한지 한바탕 크게 웃어젖혔다. 그러고 보니, 문제를 냈던 친구는, 자기 앞에 ‘곰’이라고 쓴 부분을 두었다. 안 그랬으면 다른 친구가 금방 맞췄을 테니까. 이후로 필자도, 이 문제를 다른 친구들에게 신나게 내고 다녔다.


‘곰’이 ‘문’으로 바뀐 것을 본 게, 처음 경험한 언어유희였다.

그때는 그냥 말장난이라고 표현했다. 말장난으로 문제를 만들어보겠다고, 이런저런 궁리를 많이 했었다. 요즘에는 언어유희라고 던졌는데 재미없으면, ‘아재 개그’라며, 풍선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웃는다. 마냥 웃고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되새겨보게 되는 말도 있다. 방금 생각난 건데, ‘답답해야 답을 찾는다.’ 같은 거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의미와 같다.


‘벽이 있어야 문을 만들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막혀있는 곳이 있어야 뚫어서 통로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매우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이었는데, 듣고 보니 새롭게 다가온다. 벽은 우리가 갈 수 없는 막막함이라면, 그 막막함을 통해 새로운 문을 만들어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개개인은 누군가에게는 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통해, 알지 못했던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타인과 마주하면, 그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문이다.” 이 말을 깊이 생각하고 실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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